주인공 정치의 1인으로 모드 전환하라. 젊은이들이 나서지 않으면 후진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결코 되잡을 수 없다.
돼지 김용민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그렇게 뛰어나고 품성이 훌륭한 피디인지 몰랐다. 점심에 밥을 두 그릇 추가로 시켜 먹었던 기억밖에 안 난다.
요즘의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나꼼수」 4인방은 전형적인 루저(Loser, 패배자)이다. 이들이 모여서 하는 방송은 이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저항의 목소리이고, 패자에게 용기 내라고 하는 패자부활전의 메시지이다. 또 권위주의 정권에 짓밟히고 있는 국민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는 희망의 함성이다.
우리 국민과 국익을 생각하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양보하는 자세는 물론 의미 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친하니까, 인간관계를 돈독히 할 목적으로 양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국 정치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난센스’다
어떻게든 케이크 하나 정도는 사야 했다. 돈은 떨어지고 카드는 사용 중지다. 할 수 없다. 아내가 자는지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집사람 지갑에 손을 뻗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입’에 대한 비판은 단순한 수준을 넘어섰다. 저주에 가까웠다. 그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는 데 내가 제일 앞장섰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MB 정권이 운영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파쇼의 통치술 판박이다.
부패한 정치는 무관심이란 환경 속에 냉소주의란 옷을 입고 투표 불참이란 음식을 먹고 서식한다. 부패한 정치인, 부패하고자 하는 정치인에게 가장 훌륭한 서식 환경은 무관심이다.
SNS는 모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타인의 행위와 정치적 결정에 반응하는 것보다 내가 한 이야기, 내가 펼친 주장에 대해 다른 청중들 나아가 70억 인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두고 기뻐하고 흥분하는 주인공의 입장으로 전환된 것이다.
보수 진영은 국민 대중을 통치의 대상으로 판단한다. 국민의 현실적인 수준, 욕구, 욕망, 그리고 이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파악하고 이런 욕구를 통치하기 위한 기술로 정치를 대입시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남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적 투표 성향은 가장 강력한 현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강력한 투표 결정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 정봉주를 기소한 것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건전한 상식을 기소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보복은 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했던 정치는 이처럼 보복 위에 피는 추한 꽃이 아닙니다. 정치는 자신의 아비인 사도세자를 죽인 반대파들도 아침저녁으로 웃으면서 얼굴을 맞대야 했던 정조의 운명처럼, 그러한 관용과 포용 위에 피는 화합의 꽃입니다.
동영상에서 MB는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말도 안 되는 유명한 논평으로 이 사건을 덮었다. “설립했다고는 했지만 ‘내가’라는 주어가 없다”는 논평이었다. 실소만 나올 뿐이었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의 입을 자처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법이란 테두리가 두려워 보신주의에 입각해 정작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도덕성 검증을 회피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동네 구멍가게 하나 계약해놓고 물건도 들여놓지 않은 상황에서 한 달 수익을 자기 마음대로 2억 원 정도로 계산해서 앞으로의 생활수준을 계산한 것과 같다.
대학재단에 있는 누적적립금은 엄밀히 따지면 대학 자체의 재정이 아니다. 현 재학생들의 선배, 부모님들이 낸 등록금 중 일부이다. 우리는 후배들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이 적립금을 사용하라고 이미 허락했다.
하나의 유쾌한 유령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다. 「나꼼수」라는 유령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만이, 돈으로 환산되는 모든 것만이, 당장 내 앞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1퍼센트에게는 유령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유령이. 그 「나꼼수」를 이루는 기둥 중 하나인 정봉주의 책은 그 자신이 그렇듯 유쾌하고 가볍다. 그러나 그 유쾌하고 가벼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정의를 갈구하고 상식을 열망하는 이 비뚤어진 시대의 염원에 동의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역대 어느 정치가가 이토록 잘난 척을 하면서 이토록 귀여움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헌신, 겸손 그리고 열정! 나는 책을 든 순간부터 단숨에 끝까지 읽어나가며 영영 우리에게 사라져버린 줄만 알았던 희망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봉주가 뛰는 동안에는, 우리가 그를 뛸 수 있게 해주는 동안에는. 그리고 그가 옳은 길로 뛰어가도록 우리가 그를 채찍질하는 동안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점점 자라날 그 희망이! (추기: 그런데 왜 하필 둘만이 들어가는 골방에 들어가 있었는지. 상상을 하면 약간 느끼하며 의심의 여지가 있다. ㅋㅋ) 공지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