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은 재단 대원들이 달아나게 내버려두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동호대교 교각 아래로 돌아간 적들은 거기 모여 있는 겁에 질린 인간들을 향해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자, 너희 동료도 도망갔군. 이제 너희도 갈 준비를 해야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들이 사악하게 웃었다. 20여 명의 노약자와 5명의 대원을 포위한 그들의 총구가 다가오자 아직 살아남은 대원들은 그런 노약자들을 지키듯이 앞으로 나섰다. “약자를 위해 몸을 던진다,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야. 방금 전 도망간 풋내기들보다 훌륭하다.” “……지금은 퇴각했을 뿐이다. 곧 돌아와서 너희를 박살 낼 거다.” 참지 못한 대원 하나가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그러자 이 적들의 리더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총구를 머리에 갖다 댔다. “흐흐흐, 글쎄. 희망을 품는 것은 좋지만 언제쯤 돌아올까? 내가 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올 수 있을까? 엉? 왜 대답이 없어? 못 오는 걸 너도 아는 거지.” 총성이 울리고 피와 뇌수가 뒤통수로 튀겼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고 노인들이 아이를 감싸 안았다. 적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킬킬 웃었다. 리더는 총을 불끈 치켜들고 연설했다. “당은 관대하다. 자발적으로 당의 행사에 참여하는 자에게 당은 자비를 베풀 용의가 있다. 너희 중 당을 따를 각오가 있는 자가 있나?” “살려주겠다는 말이냐?” 대원 하나가 말하자, 다른 대원들이 책망의 눈빛을 보냈다. 동조하는 것조차 혐오스러운 약탈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 당에 충성을 맹세하면 목숨도 살려주고, 밥도 먹여주고, 우리의 동지가 되어 위대한 과업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베풀겠다!” “나, 나는 맹세하겠소! 목숨만 살려주면 당에 충성하겠소!” 노인 한 명이 일어났다. 노인은 재단 사람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적들의 발치에 매달렸다. 당의 리더는 웃긴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다가 리볼버를 내밀었다. “정말 충성할 수 있겠나? 그럼 이걸로…… 그래, 저놈의 표정이 악질 반동 같군. 저놈을 쏴.” 악마의 제안에 노인이 움찔거리다가, 서서히 손을 뻗어 권총을 받아들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지목당한 대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저들을 지키려고 지금까지 싸웠는데, 그런 자신들에게 총을 들이댄다니? 누렇게 황태가 낀 노인의 눈이 불신과 배신감과 절망에 떨리는 대원의 눈과 마주했다. “미, 미안하이!” 노인이 외면하며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틱. 총성 대신 빈 총 소리만 났다. 당의 놈들이 낮게 비웃었고, 당의 리더는 다시 권총을 뺏고 총알을 한 발 넣었다. 이번에는 노인의 과녁이 됐던 대원에게 총이 돌아갔다. “미안하지만 당은 쓸모없는 늙은이 따위는 취급하지 않아. 어이, 반동. 이번에는 자네가 한번 해보지. 저 노인을 쏘면 당에 받아주겠어. 오오, 날 쏠 생각은 하지 말라구. 그러면 여기 있는 모든 인간을 다 죽일 테니까. 자자, 눈 딱 감고 해봐.” “꺼져, 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