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하는 사이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무겁게 느껴지는 여행 가방을 끌고 역 구내를 빠져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국장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서 M카운터 24번 테이블을 찾았다. M카운터는 공항에서 가장 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에 멀리에서 태산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곧바로 남미에 동행할 여행사 직원인 가이드도 만났다. 이내 홍식이가 도착하여 일행에 합류하였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미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 12명은 출국 수속을 끝내고 헤어졌다고 한다. 우리도 서둘러서 항공기 출발 3시간을 앞두고 짐을 탁송하고 탑승권Boarding Pass도 받아들면서 항공사의 탑승 수속을 끝냈다. 여권에 법무부의 출국 심사 허가 도장도 받았다. 탑승 시간까지 공항면세구역에서 2시간 이상을 보내야 하는데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하는 일 없이 애꿎은 발품을 팔면서 면세점 이곳저곳 몇 군데를 드나들며 시간을 보냈다. 항공기 출발 30분 전에 탑승 게이트에서 일행을 확인하고 탑승하였다. 그렇게 LA행 20시 50분발 OZ204편이 인천공항 활주로를 이륙하면서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p.16
쿠바 행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멕시코 여행은 여기서 접어야 했다. 항공기는 오후 3시 35분에 출발하는 쿠바나Cubana 항공이었는데 항공기의 연결 편 때문에 6시까지 5시간 이상을 공항 내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사회주의 국가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항공기의 연발로 시작되었다. 그나마 6시에 출발하는 항공기라도 제대로 떠났으면 하는 조 바심이 생겼다. 사회주의 국가란 이런 것일까? 러시아에서 경험했던 바에 의하면 항공기의 연발은 다반사였고 결항도 밥 먹듯 하였다. 그나마 이곳에서는 결항이 아닌 지연출발인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칸쿤 국제공항은 북미와 중남미로 운항하는 항공편은 많은데 시설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면세점, 승객 대기실, 화장실 등 어느 것 하나 편리하게 갖추어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쿠바로 운행되는 직항편이 아직 없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멕시코를 경유하여 입국해야 하므로 이곳에서 쿠바행 항공편은 늘 만석이라고 한다. 공항에서 5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여행인지 고행인지 판단될 것 같았다. ---p.48
쿠스코에서 뿌노로 가는 국도 상에 ‘오로페사Oropesa : 빵 굽는 마을’라는 작은 마을에 버스가 멈추어 섰다. 빵을 굽는 마을인데 유명한 빵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수작업으로 밀가루 반죽을 빗어서 하루 정도 상온에서 숙성시켜 재래식 가마에서 구어 내는 빵이다. 빵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는데 맛있는 빵이라고 설명했다. 오가는 관광버스들이 우리처럼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빵을 사는 모습도 목격됐다. 빵을 보고 놀란 것은 빵의 크기였다. 빵 한 개의 크기가 임신부의 배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큰 물건치고 실속 있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아마도 크기로 한몫을 하는 것이라 생각됐다. 이렇게 큰 빵은 아직까지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빵 한쪽을 떼어서 입에 넣었더니 겉보기와는 달리 맛이 기가 막혔다. 맛을 보고서야 빵의 진면목을 이해했다. ---p.118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민자들의 거리로 알려진 구시가지 보까La Boca 지역으로 갔다. 보까는 탱고가 시작된 곳으로 본래의 뜻은 ‘입’을 상징한다고 한다. 보까 지역에서 받은 첫인상은 거리가 낡고 허름해서 칙칙한 느낌을 받았다. 보까 지역은 항구가 있는 곳으로 이민자들의 동네, 가난한 자들의 동네이다. 허름한 창고나 페인트가 벗겨진 창고형의 집들이 수두룩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익히 들었던 아르헨티나 축구팀 ‘보까 주니어스 클럽’의 전용구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선수 메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살아 있는 축구의 전설 마라도나가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남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첫째가 축구라고 한다. 축구를 모르면 장가도 못 갈 정도로 축구는 아르헨티나 남성의 자존심이다. 이곳에서는 까미니또Caminito라는 예술의 거리가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까미니또 입구에 도착하니 건물의 베란다에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명인사 세 명이 우리를 마중하였다. 보까의 도심 풍경과는 달리 까미니또 거리는 분위기도 밝았고 건물도 컬러풀하게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 ---p.174
브라질 하면 커피를 빼놓고 이야기가 안 되는 국가이다. 브라질은 1727년 아프리카의 기아나로부터 커피를 처음 들여왔고 해발 900m 고지에서 재배한다고 한다. 리우데자네이루 주의 고원지대는 19세기부터 커피가 가장 중요한 상업 작물로 커피 농장이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브라질은 현재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전 세계 커피 생산의 25%~30%를 차지한다. 브라질은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로브스타Robusta종’의 최대 커피 수출국이다. 로브스타는 인스턴트커피의 주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브라질 외에 중남미에서는 과테말라, 콜롬비아, 자메이카 등이 커피 재배의 강국으로 알려졌다. ---p.229
오전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시내 관광을 마치고 태평양 연안의 휴양 도시로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칠레 해안가의 63번 국도를 이용하여 1시간 30분 정도 이동해 시인 네루다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칠레 제일의 휴양도시 발파라이소Valparaiso로 향하였다. 산티아고 시내를 조금 벗어나서 우리가 탄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차창 밖으로 볼 수 있는 칠레의 농촌 풍경은 초록 빛깔의 드넓은 포도밭이었다. 포도밭 농장 하나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버스를 타고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달리고 또 달려도 포도밭 과 옥수수 밭만 보일 뿐 그 외의 작물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지역은 태평양 연안의 미국 캘리포니아와 비슷한 해양성 기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연간 강수량이 600mm 정도로 날씨가 건조하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기후나 토질이 포도 농사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p.264
3주일 동안 중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이다. 가장 중요한 짐정리를 먼저 하였다. 불필요한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하나 둘씩 버리고 짐을 줄였다. 특히 건강문제로 한 보따리 싸왔던 약은 주저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통째로 넣었다. 약을 먹지 않고 자연 치유를 하였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처방을 받고 지어온 약이지만 약을 버리는 것에 아까울 것이 없었다. 모든 여행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버리는 물건들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기로 하였다. 아침 식사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이상 남았다. 룸에서 기다리다가 넉넉하게 시간을 갖고서 식사를 마쳤다. 우리가 LA를 떠나는 날 아침, 이곳의 톱뉴스는 어제 방문했던 비버리 힐스의 한 호텔 방에서 가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비보였다. 그녀는 최고의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당대 최고의 명가수이다. OST앨범 중에서 역대 최고 판매를 올렸던 영화 음악 ‘I will always love you’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였다. 약물 과다 복용인지 자살인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