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휘소는 과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그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과학을 좋아하기까지 했다.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과학의 세계가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다 휘소는 『어린이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민희식에게 읽었던 내용을 쉽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p.13 중에서
휘소는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든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도 들여다보고 양파와 마늘은 물론 심지어는 개미와 코딱지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때마다 휘소는 탄성을 질렀다. ‘아! 양파의 세포가 이렇게 생겼구나. 개미는 이렇게 생겼고. 이제 보니까 식물의 세포가 동물의 세포보다 훨씬 아름답구나.’ 휘소가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은 양파나 개미에 그치지 않았다. 휘소는 오줌도 관찰했고 나뭇잎도 관찰했으며 꽃잎도 관찰했다. 주변에 있는 것들은 모조리 관찰해 보았다. ---p.25 중에서
휘소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트럭에서도 책을 읽었다 천막 사이로 햇빛이 비쳐 들 때마다 책을 찾아 읽었다. 가끔은 소설책도 읽었지만 휘소가 주로 읽는 것은 수학이나 과학책이었다. 이미 풀었던 수학 문제를 몇 번이고 다시 풀었고 마찬가지로 되풀이 해 읽었다. 얼마나 책을 열심히 읽었는지 마산에 도착할 무렵에는 책장이 너덜거릴 정도였다. ---p.73 중에서
아인슈타인은 밤늦게까지 노트와 몇 장의 종이를 갖고 씨름하다 잠이 든 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 휘소는 마이애미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기사가 실린 신문을 사서 읽었다. 신문에는 아인슈타인의 사진도 큼직하게 실려 있었다. 휘소는 신문을 보면서 아인슈타인처럼 죽을 때까지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과학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83 중에서
현대 대수학의 마지막 시간이 끝나자 스내퍼 교수는 휘소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렀다. 그리고 휘소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네, 이 학교에서 내 강의를 끝까지 들어 준 학생은 자네가 처음이었네.” 이 말 한마디에 휘소는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아니야. 사실은 자네를 가르치기 위해 나도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네. 그러니까 내가 더 고맙지.” ---p.93 중에서
모두의 예상대로 휘소는 박사 과정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휘소의 점수는 93점이었다. 이 점수는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아야 받을 수 있는 점수였고, 2등과는 20점 차이가 났다. 이처럼 높은 점수는 펜실베이니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보지 못한 점수였다. 휘소가 박사 과정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는 소문은 금세 미국 전역에 퍼졌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 오펜하이머는 휘소의 박사 과정 시험지와 논문을 모두 읽어 보고 영국의 사회인류학자인 프레이저를 휘소에게 보냈다. 오펜하이머가 직접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p.114 중에서
어릴 적 휘소는 밤하늘을 보다가 인간의 몸이 별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립자의 세계와 우주가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주의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인 지구, 지구에 사는 인간,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 이것을 또한 바위보다 작은 돌멩이, 돌멩이보다 작은 자갈돌, 원소는 자갈보다 더 작은 모래에 비유할 수 있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휘소는 중간자를 연구하면서 파이온 같은 소립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122 중에서
국제 고에너지 물리학회는 7월 15일부터 약 6주 동안 열렸다. 6주 동안 열리는 학회에서 이휘소는 자신이 발표했던 논문 가운데 하나를 명쾌하게 강의해서 많은 학자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강의가 끝난 뒤 벌어진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휘소의 주위에는 점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어느새 무더위 속에 열린 학회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6주 동안 열린 학회가 모두 끝나자 이제 이휘소의 이름, 벤저민 리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이름이 되었다. ---p.133 중에서
눈이 반짝이는 이휘소의 손에는 논문이 한 편 들려 있었다. 동료 학자들은 이휘소의 손에 들린 논문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닥터 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군. 이틀 만에 논문 한 편을 써 내다니 정말 놀라워.” “잘은 모르겠지만, 닥터 리의 팬티는 썩어 있을 거야.” “지금도 팬티가 썩고 있는지도 모르지.” 동료 학자들의 말에 이휘소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내 팬티는 아직 멀쩡한데……. 그래,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