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내가 20세기를 통과해온 탓일까. 일상이라는 전쟁의 무게가 여성이라는 전쟁의 무게가,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일까. 시를 쓰는 섬세한 마음으로는 이 세계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일까. ---「강성은, 심장이 하는 말」중에서
다이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헨리 제임스와 카프카, 보르헤스를 좋아하고 작고 사소한 물건들을 주워 오고 집 안을 장식하는 한 여자. 꿈과 사랑을 혼동하고 빛과 어둠을 뒤섞고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려 어둠이 올 때까지 서 있는 여자. 내가 아는 여러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사랑하는, 잘 아는 여자 같았다. ---「강성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결코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가는 거예요」중에서
‘김혜순을 읽는다’는 건 최후의 식민지라는 여성의 서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아직 내가 써야 할 시가 있다는 것. 김혜순을 읽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여성시라는 말이 사라지는 미래. ---「강성은, 여성시라는 말이 사라지는 미래」중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처럼 살아보고 싶다. 그게 뭐든지 맘껏, 흥청망청, 아끼지 않고 끝까지 누려보다 망가져도 보고, 죄를 묻는 법정에 서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는 삶. 멋지지 않은가? ---「박연준, 알면서 탕진하는 자유」중에서
이제 겨우 거의 분명하지 않은 말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목소리, 이것이 최초의 여성 목소리가 아닌가. 소리가 있으나 너무 오래 소리를 내지 못했던, 망설이며 겨우 솟아오른 목소리. 이 시대의 여성이 연합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고, 매스컴에 나와 공정과 평등과 여권 신장을 당당하게 주장하기까지, 우리는 이 최초의 소리들, 어쩌면 최초 이전의 최초, 더 이전의 최초, 아득한 시절의 최초의 소리들까지 기억해야 한다. ---「박연준, 생각하는 것이 나의 싸움이다」중에서
무대에서 맨발로,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몸으로(덩컨은 “예술에 있어 가장 고귀한 것은 나체”라고 했다), 어떤 동작의 구애도 받지 않으며 춤추는 여성을 상상해보라. 그리스의 신처럼 당당하고 건강하며 우아한 여자. 날씬하고 예뻐 보이는 동작 대신, 위대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신의 움직임! 그녀는 진정한 여성 해방을 몸으로, 춤으로 보여주었다. ---「박연준, 여성의 자유를 춤추다」중에서
나는 언제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여성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주 거칠고 날것 그대로인 음악도 좋아하지만 레이디 가가가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세련되며 매끈한 음악도 좋다. 완벽한 안무를 추는 수십 명의 댄서들과 그 가운데서 빛나고 있는 작은 체구의 그녀가 좋다. ---「백은선, 나, 이렇게 태어났어」중에서
누군가를 깊이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얼마나 값지고 허무한 것인가? 나는 나탈리 포트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나는 유대인인 그녀를,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치른 그녀를, 배우로서의 그녀를, 어머니인 그녀를, 나는 완벽했어,라고 말하던〈 블랙 스완〉의 니나를. 얼마나 알고 가깝게 느꼈을까? 그 모든 이미지들 속에서 나는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인간을 과연 얼마나 발견하였을까. ---「백은선, 단 하나의 것」중에서
저는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제 눈빛이 아직 괜찮은지를 점검하곤 해요. 선생님께서 ‘눈빛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을 때부터.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 내면의 빛이 살아 있는지 깨끗한지 내가 가진 빛이 혼탁해지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점검할 수 있는 그런 시간.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간신히, 아직은요. 제 눈이 빛나요. 어린아이처럼. 그게 좋고 기쁘고 그래도 조금은 괜찮다고, 제 눈이 저에게 말해요. 고마워요. ---「백은선, 제 눈은 빛나요, 아직」중에서
우리는 모두 이 무화과나무처럼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다. 썩어서 떨어지는 무화과 하나를 먹는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깊
은 비밀 속으로 들어간다. 이십 대에 만난 그녀도, 문학밖에 모르던 친구도, 숨겨둔 시를 꺼내어 세상 밖으로 내보내던 그 시절의 나도 한 알 한 알 땅에 떨어져 묻히고 있다. 잘 썩고 있다. ---「이영주, 무화과나무처럼」중에서
수전 손택의 글은 쉽다. 명확하다. 시원하고 명징한 사유의 힘이 문장에 들어 있다. 그녀는 사유의 힘으로 우리를 단박에 사로잡는다. 복잡하고 여러 줄기로 얽혀들어 있어야만 지식의 전형이라는 중심에서 그녀는 문장 자체로 이탈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시원한 소나기를 맞는 기분이다. 빗속에서 노는 기분이다. 캠프적이다.
---「이영주, 나는 캠프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