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화 요리사가 방송에서 몇 천 개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방송인이 모든 레시피를 기억하다니 대단하군요…… 라며 감탄하자, 요리사는 전부 기억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몇천 개는 못 만드는 겁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그것도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몇 천개를 만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황한 방송인에게 요리사는 “내 머릿속에는 요리의 형태와 맛, 냄새의 조합이 몇 천 가지가 존재합니다. 요리를 만들 때 이 기술과 이 맛을 조합하면 완성되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라고 설명했답니다. 모든 요리법을 통째로 암기하지 않아도 몇몇 기술을 정리하고, 그것을 조합하면 더욱 효율적이며 발전성도 있습니다.
그림도 요리와 비슷합니다. 특정 소재를 그리는 기술을 통째로 암기하지 않아도 융통성이 높은 기술을 조합하면 다양한 작품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자매 편인 《OX로 해설! 누구라도 간단! 퍼스를 아는 책》도 이 중화 요리사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기본 기술을 3대 기초기술이라 명명하고 그 응용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다종다양한 기술 중에서 몇 가지 기초기술을 조합하여 독립적인 기술로 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공업제품 세계에서는 그런 규격화되고, 독립성이 강하고, 추가나 교환이 간단한 구성 단위(부품)를 ‘모듈’이라고 부릅니다. 요리로 예를 들면 볶기, 찌기, 튀기기, 굽기 등 조리방법이 있지만, 밑간하고, 튀긴 후에 앙카케를 뿌리를 과정이 겹치는 요리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3가지 과정을 한 세트로 활용하면 응용범위도 훨씬 넓어집니다. 모듈화는 요리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통용되는 개념입니다.
본서를 읽다 보면 명화라 불리는 수많은 작품에도 다양한 기술과 개념이 조합되어 구도를 형성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의 생리적인 반응을 이용한 기술이나,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었던 기술과 개념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한꺼번에 설명하면 헷갈리는 분도 있습니다. 외우기 어려워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비교적 쉬운 기술과 응용범위가 넓은 개념을 독자가 모듈화하기 쉽도록 순서를 고려해서 설명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제자를 프로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끈 실적이 있는 구도 해설방법입니다. 모듈화된 기술과 개념은 비교적 단순해서 외우기 쉽습니다. 조합 방법을 억지로 강조할 생각은 없으므로 각자 조합을 연구해봅시다.
다만, 수많은 학생을 가르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배운 기술을 스스로 취사선택하고, 가르치지 않는 점까지 모듈화를 해내는 타입과 그러지 못하는 타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이해력의 차이라고 예사롭게 생각했는데, 교육학 전문가에게 상담했더니, 이런 예시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가령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가는 길을 몇 가지 루트로 개척해가는 타입과 가르쳐준 루트만 가는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후자는 융통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우직하게 한길을 파므로 한 길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떠냐고 그러시더군요.
확실히 전자는 다양한 표현을 마음껏 창출해내지만, 길을 잘못 들거나, 멀리 돌아갈 위험성도 있습니다. 후자는 비록 시간이 걸리지만, 꿋꿋하게 결승점에 도달합니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모두에게 장단점이 있으므로 그 자체가 그 사람의 개성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 이후로 대학교나 전문학교, 강좌 등에서 한 가지 방법만 반복하는 사람이라도 최대한 낙담하지 않게 가르치는 방법을 의식하며 궁리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스몰스텝을 쌓아서 빅스텝을 밟게 하자는 생각입니다. 스몰스텝을 쌓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에게 효과적인 방법론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생과 제자가 1대1로 한 단계씩 밟아가는 방법이 현재로서도 유효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하는 많은 사람에게 구도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본서를 구매해주신 여러분께 이 책이 좋은 만남이 되었기를 기원합니다.
2017년 늦가을 기타노 모구라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