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라는 말은 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문학사??라는 책 전체를 통해 그런 찬사를 받은 작품은 이 시밖에 없었다. 그러한 평가를 받은 시인의 이름을 왜 필자는 처음 듣는 것인가?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를 통해 백석이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월남하지 않고 북쪽에서 작품 활동을 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6·25전쟁 중에 행방불명이 된 정지용이나 김기림과는 다른 유형의 시인인 것이다. 매우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인데 분단 상황 때문에 이름조차 모르고 지내왔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라는 마지막 시행이 가슴을 때렸다. --- p.4
백석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열거의 방법을 사용한다. 열거의 방법은 음식의 명칭, 놀이, 인물들의 외모 묘사에서부터 사건의 진행 과정이나 풍물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된다. 열거는 대개의 경우 시구들 간의 대립구조와 결합되어 미묘한 운율감을 자아낸다. ‘여우난골족’에 나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 신리 고모 / 고모의 딸 이녀 / 작은 이녀’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 토산 고모 / 고모의 딸 승녀 / 아들 승동이’ 같은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요컨대 열거와 결합된 이항 대립의 형식이 백석 시의 운율미를 형성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표면적으로는 줄글처럼 보이는 백석의 시가 나름의 운율감을 머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 pp.39-40
토속적 세계를 드러낸 시야말로 백석만이 다룰 수 있는 새롭고 특이한 영역이었다. 그래서 여러 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시집의 토속적 세계에 대해 새삼 놀라워하고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문단의 반응을 대하고 백석은 이번에는 자각적이고 의식적으로 토속적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어지는 탐구의 과정을 통해 그는 민족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민족의 내면세계를 만나게 된다. 「사슴」 이후의 시편에서 백석의 시는 우리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시집 발간 이후 문단의 반응을 통해 비로소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 p.44
하늘은 현실과 거리를 두고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에서 환한 햇볕만 바라고 사는 시인의 모습을 사랑한다. 여기에는 현실과 거리를 두지만 맑고 따뜻한 삶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다음 마지막 연에서 백석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늘은 이러한 속성을 가진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한다고 했다. 이 말은 정신적으로 현실과 거리를 둔 시인이 우리 주위에 존재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이 더욱 고결해진다는 뜻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시인의 존재 이유를 언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