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생하였다.〈대구일보〉신춘문예와〈강원일보〉신춘문예,〈영남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평소 역사물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와 추리, 판타지를 아우른 새로운 형태의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저자 : 박희섭
서울에서 출생하여.〈매일신문〉신춘문예와〈스포츠서울〉에 SF 소설이 당선되었다.〈매일신문〉 장편공모에 당선되었으며, 열대 아프리카의 독립운동을 그린 장편소설 『검은 강江』을 출간하였다. 일제의 식민지 영구 침략음모를 다룬 장편소설 『관방비록』과 현대 젊은이들의 의문의 자살사건을 파헤친 장편소설 『백악기의 추억』을 발표한 바 있다. 신문연재 대하소설인 『동천冬天』으로 대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을 받았다. 현재 대구소설가협회 회장으로 있다.
“대체 이 여인은 누구냐?” “신첩의 시녀이옵니다. 성은 장(張)인데 그냥 자려라고 부르옵니다.” “시녀라? 보아하니 궁녀는 아닌 듯한데…….” “예. 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신첩과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라 심심할 때 얘기나 나누고 또 여러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신첩 임의로 궐내로 들어와 지내게 하였사옵니다.” “그래? 그럼 어디 고개를 들어 보라.” 왕의 명령에 여인이 다소곳하게 고개를 든다. 얼굴은 도리암직하였지만 살결은 흰 편이고 눈매는 선하게 생겼다. 하지만 귀밑머리와 눈썹이 남자처럼 검고 진한 게 특이하다. 옹주와 비슷한 연배로 스물두셋쯤 되었을까. 긴 머리가 다소 흐트러졌고 양 볼에 발그레하게 홍조가 어려 있다.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타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래, 둘이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이놈아, 두 오라버니를 죽이고 남편까지 죽였으면 나도 죽여야지, 어서 죽여라!” “죄 없는 행인을 해치는 너네 같은 악종들은 모조리 없애 마땅하지만, 네 서방과 두 오라비 초상이나 치르도록 너는 살려두마.” 양검의 말에 여자가 피를 토하듯 저주에 찬 악담을 쏟아놓는다. “그래. 오냐, 두고 보자. 네놈이 오늘 나를 죽이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해주마.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꼭 네놈을 찾아서 사지를 갈아 마실 테니 그때까지 네놈은 절대 죽을 생각도 말고 기다려 다오.” 어린 여자가 내뱉는 말치고는 극악하고 섬뜩하기 짝이 없다. “그래. 네가 날 죽일 수 있다면 그때까지 기다려 주마.” “오냐. 제발 이름이나 알려다오.” 몸을 돌리던 양검이 싸늘하게 내뱉는다. “양검이라고 한다.” “양검, 네놈의 목숨을 기필코 내 손으로 빼앗고 말 테다.”
“귀한 보물이라니, 그게 뭔가?” “소문에 듣기론 어떤 오래된 비서(秘書)인데, 그 책을 통독하면 세상 이치를 다 알 수 있고, 또 세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럼 혹 고경(古鏡)을 두고 하는 말 아닌가? 거 왜 신라 말기에 왕창근(王昌瑾)이란 당나라 상인이 쌀 두 말을 주고 샀다는 오래된 거울 말일세. 궁예에게 바친 뒤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다시 세상에 나타난 건가?” “아닐세. 이번 것은 내가 알기론 『음양혼천비록』이라는 두 권의 비서인데,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당나라를 돌아다니며 음양풍수설을 연구할 때 우연히 일행(一行)이라는 밀교 도승으로부터 입수했던 거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 유명한 『도선비기(道詵秘記)』도 실은 그 『음양혼천비록』의 내용 중 일부분을 번역하여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거야. 한데 지금 나타난 그 노인이 가진 건 그 진본이라는 거지.”
마리지천은 성광(成光)이란 말로 아지랑이를 뜻했다. 마리지천은 일천(日天)의 권속으로 붙잡을 수도, 태울 수도, 적실 수도 없는 은형의 몸으로 항상 일천 앞에서 줄달음치는 자재(自在)한 신통력을 가진 천신(天神)이었다. 예전부터 승리의 신이라 하여 무사의 존중을 받는 신이었다. 이 천신이 맺은 하늘의 진언을 외우면서 은형인(隱形印)을 맺으면 육안으로는 절대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다.
고려 속요인〈동동〉의 가사와 그 의미를 기본형식으로 한 이 소설은 충혜왕에서 공민왕으로 이어지는 고려 말기의 격동기에 황도(皇都)인 개경(開城)과 벽란도, 강화도와 석모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왕과 천민, 승려와 도인, 낭인과 군인 등 각기 다른 인물들의 색다른 활약이 점층적 구조로 빠르게 전개된다.
격동의 고려말. 부왕의 후비를 둘씩이나 강간하여 희대의 색마로 알려진 충혜왕과 오로지 노국공주만을 사랑했던 공민왕. 공원왕후 홍씨의 몸에서 태어난 두 형제는 무슨 연유로 그처럼 극적으로 상반된 인생 역정을 걸어갔어야만 했을까. 소설 말미에 그 놀라운 심층적 원인이 밝혀진다. 또한 그로 인해 빚어지는 무사와 여인, 귀족과 천민, 스님과 도인의 윤회처럼 얽히고설킨 운명적인 인생 이야기. 천고의 기재. 창녕 옥천사에서 천한 사노비(私奴婢)의 아들로 태어나 후일 누구도 꿈꾸지 못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좌에 오른 도승 편조의 신산스런 삶과 치열한 노력과 도전, 노비와 민초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그의 강력한 개혁 의지, 하지만 때마침 나타난 반야로 인해 빚어지는 고려 정치사의 숨겨진 이면이 그 어떤 상상력도 뛰어넘으며 기상천외,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역사소설 『동동』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의 양태를,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 풍운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내고 있다.
인간의 심리를 움직이는 기본 동력은 그의 내부에서 들끓는 그 어떤 힘, 곧 욕망이다. 맹렬한 성취욕인 욕망 속에는 사랑이나 이상과 같은 야망에서부터 열등감이 발현하는 투기심과 상대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까지 포함된다. 역사소설 『동동』은 이처럼 욕망이 실현하는 동력 속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의 양태를,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 풍운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내고 있다. 역사소설이 문학성과 대중적인 흥미라는 양립성을 어떻게 결합시켜 독자를 매료시키는지를 생각케 하는 데 이 소설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 김원일 (소설가. 순천대 석좌교수)
읽는 재미뿐 아니라 지금 우리의 팍팍한 삶을 넉넉하게 살펴보고 이해하는 차원으로 승화시켜준다.
장편역사소설 『동동』은 손에 쥐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빨아들여 한순간에 고려말의 시간 속을 거닐게 한다. 작가는 고려 말기의 왕족과 궁녀, 무사와 승려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이 꿈꾸는 욕망과 사랑에 매달려 살아가는 모습을 박진감 있으면서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려 말기의 격동적인 사회상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인생들이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욕망과 슬픔에 휘말려 어우러지는 모습은 읽는 재미뿐 아니라 지금 우리의 팍팍한 삶을 넉넉하게 살펴보고 이해하는 차원으로 승화시켜준다. 문형렬 (소설가)
매혹적인 욕망과 관능의 세계에서 빚어내는 사랑의 행위는 가히 전율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명적인 관능의 팜므파탈. 세상의 모든 남자를 성의 노예로 타락시키는 쾌락불의 몸을 타고난 지심녀와 하룻밤 정인을 찾아 세상을 떠도는 순결한 영혼 유정의 대비는 시대를 초월한 욕망과 성, 그리고 사랑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안개같이 불투명한 시대에 죽음도 불사한 여인들이 매혹적인 욕망과 관능의 세계에서 빚어내는 사랑의 행위는 가히 전율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경원 (『와인이 있는 침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