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경험하지만, 우리의 완전한 세계가 고양되는 순간, (스탕달 Stendhal이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진액을 빨아들인 꽃들이 순식간에 한데 모여 결정(結晶)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은, 언제나 단 한순간, 오직 한 번 뿐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처럼 마술적이며, 체험된 비밀로 삶의 따뜻한 내면에 꼭꼭 숨어있기에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정신의 대수학도 그 한 순간을 계산할 수 없고, 어떤 예감의 연금술을 가지고도 추측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독자적인 감정을 통해서도 그 순간을 붙잡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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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갑자기 선생님이 마음을 다잡은 듯 내게 다가오면서 웃음을 지었습니다. 불쾌하고 꺼림칙한 미소, 입술을 꽉 깨물며 두 눈에서 위험한 빛을 내는 미소가 낯선 가면처럼 경직된 표정으로 나를 비웃었습니다. 그 다음, 갈라진 뱀의 혀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나는 그저 자네에게 말할 게 있어서 그러네... 그러니까 우리가 너’라고 한 거.... 그게... 그게... 학생과 선생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거라는 이야기일세... 무슨 말인지 알겠나?... 서로 거리를 두는 게 맞아... 거리... 거리 말일세.” --- p.135
우리 네 사람은 신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선생님 부인과 나, 두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서로 말을 섞는 것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건너 뛴 채 말하고 웃었습니다. 시선이 마주치면 무의식중에 같은 감정을 느끼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가져온 고통이 여전히 느껴져서, 부끄러운 불안감으로 상대방의 기억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후 시간은 보트놀이를 하느라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는 점점 더 안락한 피로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와인과 더위, 그리고 빨아들일 것 같은 햇빛이 서서히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서 붉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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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한 인간이 인생에 단 한차례, 한 인간만을 위해 말하고는 영원히 침묵한 것입니다. 마치 죽어가면서 딱 한 번 쉰 목소리로 소리쳐 노래 부른다고 알려진 백조의 전설처럼... 그의 목소리를 나는 떨면서 고통스럽게 받아 들였습니다. 한 여자가 남자를 자기 몸속에 받아들이듯, 뜨겁게 토해나온 불이 밀려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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