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 Time’은 ‘조용한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QT하는 목적을 정확히 드러내지 못하며, 동양적인 사고가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실제 영어권에서는 Quiet Time 대신 Devo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Devotion의 뜻은 ‘집중, 헌신’입니다.
‘오늘 무슨 말씀을 주시든 내가 이 말씀에 집중하고, 오늘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그 결론에 나를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본문을 대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지 집중하여 듣겠다는 태도로 앉아있는 아이와 조용히 듣기만 하겠다는 아이의 태도는 확연히 다릅니다. 집중하여 듣겠다는 아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오는 사랑을 더 잘 깨닫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 20-21 페이지 중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위한 방법을 한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진로를 결정할 때, ‘이 남자와 연애를 해야 하나’ 궁금할 때, 명절에 시댁에 가야 할 때, 이런 저런 고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QT 하는 이유일 것이며, 이 일들에 대해 하나님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따로 떼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바로 그 문제들, 내 마음을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들 혹은 하나님께 인도받고 싶은 것들을,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적습니다. 자세히 적을 필요 없이 자신이 알아볼 수 있게만 적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본문을 통해 그런 문제들에 대해 내게 말씀하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적으면, 놀랍게도 본문의 말씀과 내가 적어둔 그 상황들이 더 쉽게 연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청년들은 5월이나 10월이 되면 이 여백에 ‘결혼식 가기 싫음’이라는 말을 많이 적습니다. 동생들이 청첩장을 가져오거나, 이제까지 축의금은 많이 냈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까지 결혼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마음이 심란한 것이지요. 이렇게 은밀한 마음까지도 적어보면, 바로 그 기록하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주실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28-29페이지 중에서
QT는 ‘Dedication time’입니다. 즉 바치는(Dedication) 시간입니다. QT의 목표는 내 인생을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내 재물과 시간,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 내 영혼이 편안해집니다. 하나님만 내 영혼에 가득할 때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지금 바로 바쳐야 할 것, 오늘 어떤 만남 속에서 바쳐야 할 것, 일 년 동안 혹은 내 평생에 바쳐야 할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주님 앞에 바치는 시간이 QT 시간입니다.
본문 38페이지 중에서
나치가 유대인들을 적게는 400만, 많게는 600만 명을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에서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학살에 그리스도인이 일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협박하며 유대인들의 행방을 묻는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게 칼빈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는 대로 말하는 바람에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행방을 알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적인 답은 ‘나는 그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고 유대인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불순종하는 일이라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래서 정말 가장 올바른 행동을 하고 싶다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알고 있지만, 말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본문 58페이지 중에서
루터는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내 머리 위에 둥지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음욕에 관한 설교 중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성을 보고 음욕이 순간적으로 생기는 것은 막기 힘든 일일지라도 그것이 둥지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본문 59중에서
QT의 핵심을 두 가지 단어로 정리한다면 ‘회개’와 ‘회복’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의 영을 누리고, 기도의 영을 누리면 처음 나타나는 반응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QT 시간에 회개는 슬쩍 지나가고, 간구가 많으면 그 사람은 영적 탐욕과 오만함으로 인해 무너집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지 않으려면 내 영혼에 회개하는 심령이 충만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QT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QT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내가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맞서지 말고 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맞서면 인생에 금이 가고 깨어집니다. 죄인으로서 거룩하신 분 앞에 서면 가장 처음 경험되는 감정,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죄성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 68중에서
그럼에도 적용이 없는 QT는 지적 놀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다면서, 삶으로 꽃피우지 못한다면, 그의 지식, 그의 노력은 모두 자신의 상아탑을 쌓아올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WWJD(What would Jesus do?)라고 표현합니다. 적용할 때의 기준은 내가 할 수 있는 정도, 사회가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결론을 내리실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본문 130-131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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