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양심에는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늘 성실하게 작동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습니다.--- p.9
지금 우리가 인성교육이 부족하거나 잘 안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양심을 어른들이 자꾸 누르거나 제대로 길러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아이의 양심을 억압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성이 말라죽는 것이죠.--- p.12
인성교육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늘 자신부터, 선생님과 부모님부터 양심을 잘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자녀들이 타고난 양심의 능력(사랑·정의·예절·지혜·성실)을 제대로 계발하여 그것을 잘 발현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됩니다.--- p.16
맹자는 이러한 인간의 선천적인 도덕 능력을 ‘양심良心’이라고 불렀습니다. ‘양심’이라는 말은 맹자가 처음 쓴 표현으로, 본래 ‘타고난 선량한 마음’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양심’을 흔히 후천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맹자가 말한 ‘양심’은 그와는 전혀 다릅니다. 맹자는 후천적인 교육에 물들기 이전에, 인간이면 누구나 선천적 도덕 능력인 ‘양심’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성교육의 핵심이 여기에 있으니까요.--- p.19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도 분명해집니다. ‘인간의 길’을 잘 걷도록 돕는 것이 바로 ‘교육’인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참된 인간’을 배양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주자연이 마련한 ‘인간의 길’을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도해야 합니다.--- p.38
무엇보다 ‘교사’의 역할이 소중합니다. … 학생들이 무형의 길인 ‘인간의 길’을 분명히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은, 교사가 자신의 ‘생각·감정·언행’으로 ‘인간의 길’을 제대로 표현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p.39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의 핵심인 ‘홍익인간 이념’도 바로 우리의 ‘양심의 회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밝은 덕’ 즉 ‘양심’을 다시 밝혀야만, 우리 자신이 온전히 자립할 수 있고 남도 온전히 도와줄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가 모두 지극한 선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p.46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더라도 ‘저자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독서는 실패한 독서입니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저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어야 합니다. 독서는 시공을 초월한 대화이니,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해서는 훌륭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때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p.58
우리 사회는 이렇게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을 시급히 길러 내야 합니다. 영성지능이 높은 이야말로 진정한 ‘영재’이고 ‘천재’이며, 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진정한 ‘리더’이기 때문입니다.--- p.65
양심적인 ‘영성지능’이 계발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자명한 진실을 지향하기 때문에, 나와 남에게 두루 도움이 되는 ‘선행’만을 추구하고 실천합니다. 그러나 ‘이기적 욕심’을 바탕으로 지식과 재능만을 추구하는 소인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의 선한 행실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남기려 합니다. 남의 선한 말을 활용하여 자신의 추악함을 감춥니다. 이것은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는 것이요, 도적에게 식량을 가져다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p.66
‘정의’란 “내가 당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말라!”는 양심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양심에 새겨진 이 정의로운 명령은 ‘자연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모든 ‘실정법’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니 양심의 명령을 잘 따르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율적인 사람’,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며,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호연지기를 잘 기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p.71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잘 챙겨 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어, 내가 허락하지 않은 생각은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일에 몰입할 수 있어 일처리를 잘하게 되고, 공부를 할 때는 공부에 몰입할 수 있어 학습의 능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됩니다. 조선의 천재로 불리는 이율곡도, 바로 이러한 몰입법으로 자신의 능력을 탁월하게 계발했던 것입니다.--- p.81
소인은 ‘욕심’을 더 추구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양심적이기 전에는 자신이 먼저 양심을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 전체가 모두 욕심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반면, 군자는 남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양심의 평가’만을 중시합니다. 그러기에 남이 양심적이건 말건 스스로가 양심적이고자 노력하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늘 나부터 먼저 양심을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남들까지도 양심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를 정화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군자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p.88
‘양심’은 본능적으로 대아적 효율성을 계산하며, ‘에고’는 본능적으로 소아적 효율성을 계산합니다. 그래서 ‘양심’은 대아적 효율성이 낮은 일, 즉 ‘전체’(대아)에 손해가 가는 일에는 분개하고, 대아적 효율성이 높은 일, 즉 전체에 이익이 되는 일에는 기뻐합니다. 반대로 ‘에고’는 소아적 효율성이 낮은 일, 즉 ‘자신’(소아)에게 손해가 가는 일에는 분개하고, 소아적 효율성이 높은 일, 즉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는 기뻐합니다.--- p.94
불이 뜨겁다는 것을 명확히 알기에 누구도 불속에 손을 집어넣지 않는 것처럼, 자명하게 선을 알고 선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주자연을 닮아 늘 정성스러운, ‘성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