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강론을 해도 되겠냐고 미리 여기저기 물어봤던 결과, 수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이렇게 고백하고 말았다.
“저는 오늘 제 첫사랑의 혼배 미사를 봉헌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손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붙잡고 다른 한 손에는 카타리나에 대한 사랑을 붙잡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카타리나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온전히 매달려 살겠습니다. 예쁘게 살으렴, 친구야!”
물론 제대로 된 강론도 잊지 않았다. 몇몇 신자들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고 따가운 신랑의 눈빛도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날부로 정말 자유롭게 하느님을 향할 수 있게 되었다.
-첫사랑 카타리나, 20쪽
다행히 잠시 후 전화벨 소리가 들렸고 내 근처에 있던 그분의 휴대폰을 찾아 넘겨드리는데 그분의 휴대폰 화면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말았다. 화면 가득 ‘민폐남’이라고 뜨던 내 이름을 보고 너무나 실망스러워 마음이 저려 왔다. 그렇게 믿음을 주고 마음을 주고 사귀었는데 그분께 나는 이삿짐이나 부탁하는 민폐남밖에 되지 않는다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황급히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형제님께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분과 연락을 끊고 거의 일 년이 지났을 때 형제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난 어색한 자리에서 긴 침묵을 깨고 모이세 형제님이 내게 물었다.
“신부님, 무슨 일 있으신 거 맞죠? 왜 저를 피하시나요?”
-착각은 나의 힘, 25-26쪽
“아니, 저 몸으로 군대를 어떻게 왔어? 야! 그 와중에도 살이 더 쪄서 신체검사를 126kg으로 통과했다더라! 하긴 통과라는 말도 웃기지! 군종은 탈락이 없으니까!”
게다가 다른 신자들이 듣는 공개된 자리에서 해군의 서 신부님으로부터 ‘너같이 무거운 애가 올라타면 군함이 가라앉으니까 해군에서는 너를 받아 줄 수 없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땐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육군 역시 몸으로 하는 훈련이 많아 받아 주기 어렵다는 이야기와 함께 결국 공군으로 분류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목사님들과 스님들은 부러워했다. 공군은 누구라도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 해군과 육군이 거부한 나를 받아 주시기로 하셨다는 조정래 신부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너무나 고마웠다.
‘무거운 몸으로 애쓴다고 격려는 못 할망정 뭐? 배가 가라앉아? 에잇, 삐뚤어질 테다.’
-나의 더 큰 바다, 35-36쪽
여기서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말마디가 어렵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창세기의 말씀 그대로라면 하느님께서 궁창을 만들어 그것을 둘로 갈라 위의 것을 하늘이라, 아래의 것을 바다라 명명하셨지! 그래! 바다와 하늘은 원래 하나였어! 하느님께서 이제 나를 더 큰 바다로 던지시는구나! 그 큰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광을 부리며 소명을 거부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가자! 더 큰 바다로 가자!’
-나의 더 큰 바다, 38-39쪽
내 귀를 의심했다. 의사라는 사람이 마치 내가 다시는 고해 성사를 듣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오른쪽 눈썹이 치켜 올려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기도했다. ‘주님! 혹시라도 이 사람과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건 아니죠. 선생님께선 히포크라테스 선서하셨잖아요? 그럼 그 선서 내용 그대로 사셔야죠. 이런 일로 환자를 외면하면 진정 선생님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으실걸요?”
분노의 불꽃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그분의 얼굴을 살피는데 다행히 그분은 수긍해 주셨다.
“알죠! 다 알죠!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러는 깁니다. 누가 뭐라케도 내는 의사이기 때문에 닥터콜에 응할 수밖에 없겠지예. 근데 선생님은 뭐 하는 분이십니꺼?”
-닥터콜, 46-47쪽
‘이게 뭐하는 짓이니? 나, 일본까지 똥이나 치우러 온 거야? 아, 놔 진짜 미치겠네. 어떤 놈인지, 술을 마시려면 곱게 마실 것이지 어디서 똥을 퍼질러 놓은 거야?’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샘솟듯 터져 나오는 분노, 잔뜩 상한 자존심에 눈물까지 퐁퐁 샘솟았다. 치약과 솔을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다가 십자가 위에 매달린 예수님과 마주쳤다. 눈을 피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결국 또 지게 될 거니까, 뭔가 의미를 찾으며 열심히 똥을 치우게 될 나를 마주하기 싫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날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똥은 누가 치우나, 70-71쪽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운 시간이 지나 퇴장 성가가 울려 퍼지고 제의방으로 돌아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라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제의를 벗으시다 뒤로 돌아서시더니 미간에 주름을 잡으시고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그런데, 자네는 무슨 땀을 그리 많이 흘리나?”
두둥! 올 것이 왔다. 머리끝까지 전율이 흘렀다.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큰 어르신께서 미간에 주름을 잡으신 채 나의 땀을 문제 삼으셨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며 주저앉을 것 같은 자신을 추스르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려는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옳거니! 자네는 땀구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운동해서 살 좀 빼는 게 어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자기 관리가 안 되면 어떡하나?’ 같은 공격성 핀잔이 아닌 나의 가장 큰 약점을 축복해 주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나를 바라보시며 한 말씀을 더 하셨다.
“인간이 땀구멍이 몇 개라더라….”
-땀구멍아 주님을 찬미하라, 89-90쪽
내세울 것이라고는 신앙 하나밖에 없는 부족한 사제인 나는 내 신앙의 근원이 10년간의 재수 끝에 얻은 어머니의 신앙임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나는 그 유산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의 모친은 참 귀한 것을 얻어 내셨다. 우리도 하느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여 이겨 냈던 야곱과 같은 굳은 의지로 그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신앙만큼은 지켜 낼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10년 재수 끝에 얻은 신앙의 유산, 117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