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오랜만이네. 그, 계절이란 말.”
내 얼굴 가득히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내가 SMS를 보낸 의도를 그녀가 이토록 정확히 이해해줄 줄은 몰랐다.
입학식 날 이야기를 나눈 다음부터 나와 후유코는 주로 기묘한 사건들의 계기를 알아내고 절차에 맞게 해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친해졌다. 그 행위는 우리 둘 사이에서는 어느새 ‘계절’이란 줄임말로 불리게 되었다. 한자로 표기하자면 계기(契機)와 절차(節次)를 합쳐 ‘계절(契節)’인데, 이것은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이름에 공통으로 사용된 요소인 ‘계절(季節)’과도 발음이 똑같았다. 우리는 이 계절이란 단어를 우리 마음대로 쓰기로 했다. 진실을 해명하는 행위를 ‘계절한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둘이 저마다 세우는 가설을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리끼리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이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우리가 즐기던 일종의 오락이었다. 어쩌다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둘이서 그 행위의 진짜 의미를 상상한다. 신기한 현상이 발생하면 원인을 알아본다. 또는 둘 중 누군가가 퀴즈를 내는 방식으로 기묘한 사건을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 정답은 밝혀질 때도 있었고, 밝혀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설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논리적으로 뭔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뭐, 그래도 가끔은 진상을 정확히 맞히는 경우도 있었고, 그때마다 축구 시합에서 골을 넣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우리 둘은 어느새 그 즐거움에 흠뻑 취해버렸다. --- p.26~27
나는 후유코를 얕보고 있었다. 찜찜한 기분을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깨달아봤자 너무 늦었다. 이미 그녀는 전화를 받았으니까.
“우선 한마디 하자면,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야. 혹시 네가 듣고 싶지 않다면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 어때?”
그래도 나는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누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배기겠는가. 역시나 나는 비겁했다.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후유코는 또렷하게 대답했다.
“응, 괜찮아.”
이야기를 들을 각오가 됐다는 뜻이다. 후유코는 강한 사람이다. 설령 겉으로만 강한 척하는 것이라 해도, 애초에 강하지 않은 사람은 강한 척하지도 못한다.
그래. 그럼 적어도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 아주 조금이라도 짧아질 수 있도록, 결론부터 빨리 말하기로 했다. 다급히 말하느라 내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후유코. 너의 남자친구는?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아.” --- p.118~119
“-안녕~ 나츠키!”
전화를 받자마자 후유코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메시지 잘 받았어. 희한하게 엇갈렸네? 그래서 그냥 전화했어.”
“엇갈리다니?”
그러자 후유코는 기쁨과 실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절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은 나도 올가을에 후쿠오카로 이동하게 되었거든.”
“……그래? 그랬구나.”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어떤 목소리로 대답하면 좋을지, 자세히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손님들의 시끄러운 소음도 딱 한순간 멈춘 것 같았다.
“잘됐네. 너도 후쿠오카에서 일하고 싶어 했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됐네.”
“응, 입사한 지 겨우 반년밖에 안 됐으니까. 마침 후쿠오카 지사에 빈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운 좋게 내가 뽑힌 것 같아. 진짜 다행이야.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상사에게 꾸준히 말해둔 보람이 있어.”
“그런데 타이밍 한번 절묘하다. 설마 이렇게 엇갈릴 줄이야.”
“그러게. 정말 아쉬워.”
후유코는 그다지 아쉬워하는 것 같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 아니, 분명히 아쉽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참을 수 없이 기쁜 것이리라.
“나츠키, 넌 언제 이쪽으로 와?”
“다음 주에 이사 갈 거야. 그래서 지금 준비하느라 바빠.”
“아, 그래? 그럼 하루 정도는 여기서 만날 수 있겠네. 나는 다다음 주에 후쿠오카로 갈 예정이거든. 그래서 그 전에 휴가를 좀 받았어.” --- p.209~210
“게다가 너희들도 그래. 너희도 꽤나 사이좋잖아. 다 안다고. 쉬는 시간에 틈만 나면 둘이서 수다 떠는 거.”
“뭐, 뭐……? 아니야, 우리는 그냥 친구야. 양다리 걸친 것도 아니고, 손조차 잡은 적도 없어.”
갑자기 반격을 당한 나는 당황했다. 뺨이 확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