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때에 이루어진 23시간의 수술
수술실로 간다며 옷을 다 벗기고 온몸의 털을 깎는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제 내가 수술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나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수술복을 입는데 갑자기 찬송이 한 곡 떠올랐다. 42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였다.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 죄 다 기억 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하소서.// 이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준령 당할 때 도우소서./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다시 태어난 감격
가까스로 눈을 떴다.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서서히 형광등이 보이고 칸막이도 보인다. 천장이 보이고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저 멀리 많은 침대들이 보인다. 넓은 중환자실 한 모퉁이에 무균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나는 그 안의 높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각종 의료기기가 보였고 몸에는 무엇인가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 수술 후 병실이구나.’ 유리창 밖으로 아내와 신대식 집사님, 그리고 의료진이 보였다. 유리창 밖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아, 살아났구나!’ 나도 웃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눈물이 흐른다. 수술실에 들어가며 부르던 찬송가 가사가 생각났다. 길 비추시고, 한 걸음씩 인도하시고, 험산준령 당할 때 도우시고…. 이 힘든 수술이 아마도 험산준령이었다 보다. ‘아,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의 부모님보다도 더 오래 살게 해 주셨구나. 눈물이 또 흐른다.
아내의 일기 II
기증한 학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온다. 그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다섯 명에게 새 생명을 주신 그 귀한 마음에 가슴 저림과 고마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라면 가능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사랑을 나도 배우고자 결심하여 후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 기증 서약을 했다.
… 어떤 청년은 중간고사 시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와서 혈소판을 제공해 주었다. 그 바람에 그 시간 내내 한 손에는 주사바늘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공부를 한 후, 내가 빵과 우유를 주며 고맙다고 하자 연신 아니라고 하며 학교로 얼른 뛰어가기도 했다. 한 뚱뚱한 청년은 뚱뚱해서 혈소판을 뺄 수 없다고 하자 자기는 부장님께 피도 못 드린다며 울기도 했다. 청년부원들은 매일 밤마다 모여서 기도한다고 했다. 간호사는 누군가가 각본을 써 놓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이승규 교수님
이 교수님은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꼭 병실에 찾아오셔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시곤 했다. 그때 이 교수님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수술 후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어느 외과 의사는 퇴임한 후에도 수술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이 교수님도 그 외과 의사처럼 ‘수술하다가 죽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그 말씀은 ‘새 생명을 얻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많은 생각을 하는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때 나는 회사일과 복음 전하는 일 중 하나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다, 열정을 다해 풀타임으로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 보자. 새 삶! 새 인생의 꿈을 펼쳐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건강을 지켜야 할 의무와 간이식인회
드디어 2001년 7월 1일, 국민건강보험재정안정 및 의약분업정책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건강보험료를 올리면서, 몇몇 희귀병 환자들의 의료비 보험 적용으로, 본인부담 경감 조항에 간이식인이 포함되었다. 법적인 근거가 마련된 것이었다. 먼저 가장 고가인 헤파빅이 50% 보험 적용을 받게 되었다가 곧 20%로 경감되니 많은 환자들이 이제 살 것 같다고 반긴다. 2001년 8월, 간이식인의 각종 치료제가 의료보험 적용이 되도록, 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첨부하여 요청서를 제출했다. 한국간이식인회 인터넷 홈페이지도 제작하여 오픈하니 모두가 하나 될 수 있어 좋은 정보 공유의 장이 되었다. 특별히 간 질환 말기 환자들의 가족들에게는, 이식 수술을 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통로요, 생소했던 그 외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귀한 통로가 되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장기 기증 문화가 문제였다. 선진국(미국)의 경우, 운전면허증 발급 시 불의의 교통사고 등으로 뇌사자가 되었을 때 장?를 기증하겠느냐 물으면 85% 정도가 동의하여 면허증에 ‘도너’(Doner)라는 표기를 하는데, 실제 장기 기증의 경우 94% 정도가 뇌사자 장기 기증이고, 6% 정도가 생체 기증자라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였다. 당시 뇌사자 장기 기증이 6%이고, 생체 기증자가 94%였다.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생각이 많고, 칼을 대면 두 번 죽인다는 생각과, 또 뇌사자 판정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장기 기증 문화가 정착되지를 못했다. … 우리 간이식인회도 결국 마찬가지다. 최고의 선은 첫째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건강해야 우리가 존재하고, 건강해야 사회에 기여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우리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일이다. 또 건강해야 선을 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 선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사경을 헤매는 말기 간 질환 환자들에게 이식의 기회가 주어지도록 장기 기증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서로사랑
여름, 겨울 전도 여행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나는, 영접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가 진단해 보았다. 그런데 10%는커녕 5%도 남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뿌린 복음의 씨가 헛되지 않아 몇 년 후에라도 열매로 맺히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허전함은 더해 갔다. 복음의 내용과 능력은 변함이 없지만 전달 방법에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였다. 세상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차별화 된 삶을 요구한다. 하지만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빼고는 차별화 된 삶을 살지 못하는 현실이 전도의 현장에서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알파코스
알파코스는 우선 전도 대상자들에 대한 표현부터 신선했다. 전도 대상자들을 ‘게스트’(Guest)라고 표현한다. 최고의 손님으로 모시겠다는 것이다. 흔히 전도 대상자를 지칭할 때 ‘불신자’란 표현을 많이 쓴다. 예수를 모르니 가르쳐야 할 대상 혹은 세상 신에 지배된, 우리가 정복해야 될 대상으로 보았다는 표현이다. 그렇다. 우리의 시각은 전도 대상자를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최고의 손님으로 보는 시각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최고의 손님으로 존중하며 정중히 모실 때 그들도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을까?
화평케 하는 자
알파코스를 적용하는 교회들이 서로서로 섬기며, 또 게스트들이 와서 변하는 모습에 함께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목사님들께서 행복해 하시면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특별히 알파코스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발견하고 흥분한 초신자들이 전도에 열심을 내니 그들 곁에는 믿지 않는 영혼들이 많은 까닭에 재생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기쁨이 가득했다. … 특별히 보수적인 두 교단의 노회가 청원하여 검증 작업을 시작했다. 안타까운 것은 검증위원 구성이었다. 조직신학 교수, 실천신학 교수, 선교학 교수들로 다양하게 구성하여 공정성을 가지고 검증하기보다는, 알파코스를 해 보지도 않은 조직신학 교수 몇 분이 정죄하는 듯한 결론을 가지고 임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 알파코스는 신약성경을 기초로 한 순수한 전도 프로그램이다. 교단의 교리가 다르면 교단의 교리를 존중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혼을 살리고 화평하게 하는 자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야 하리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