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은 무슨 연유로 저 같은 자를 이 대지에 태어나게 하셨는가!” 황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간단한 일화를 하나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평범한 소년을 길거리에서 심하게 매질하여 고발당한 백작이 있었다. 당시 그 백작은 상권을 장악했다고 해도 될 만큼 대부호였다. 그래서 백성들뿐만 아니라, 신하들도 일이 가볍게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치안본부의 보고를 받은 황제는 단 한마디로 사건을 일축했다. “그자의 전 재산의 반을 몰수하여 제국의 기반으로 삼고, 직위를 박탈한다. 또한 매질한 소년에게 잘못을 빌게 하라.” 신하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감히 백작이 평민에게 사과를 해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폐하! 그가 흥분하여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은 잘못이나, 처사가 너무 가혹하옵니다.” “또한 백작 직위까지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료되옵니다.” “어찌 한낱 평민에게 고개를 숙인단 말이옵니까!” 황제는 가볍게, 그러나 매우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가 어린아이를 매질한 이유가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 또한 이리 말하겠다. 나는 단지 썩은 살을 도려내는 것을 즐길 뿐이라고 말이다.” “그…그러나 그는 제국을 위해 한 일이 많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모두 알아두도록. 나는 ‘용서’와 ‘자비’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사람이다.”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서 백성들 중 황제의 칭송을 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은 살이 붙고 떨어지는 것. 실제로 겪어보지 않는 이상, 모를 일이 아니던가. 벨룬시아 제국 황제를 부르는 별칭은 빙제(氷帝). 본명은 시하난 하진 엘카시스 벨룬시아. 숨 막힐 듯 시린 침묵이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