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그들은 둔황(敦煌)의 푸른 오아시스를 떠났다. 짐을 실은 낙타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목에 걸린 방울에서 땡그랑땡그랑 종소리가 났다. 낙타들은 날카롭게 그림자가 진 모래 언덕에 길고 부드러운 털이 난 평평한 발로 발자국을 남기며 마지못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햇빛에 비친 면은 하얗고 그 너머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담갈색 모래 언덕은 마치 펜과 잉크로 그려놓은 대양의 파도 같았다. 승무원들은 테메레르에게 한 번에 한 마리씩 낙타를 잡아먹게 했고, 그들은 북쪽과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지그재그로 나아갔다. 행렬의 발자국 뒤로 테메레르가 잡아먹은 낙타의 뼈가 한 무더기씩 남겨졌다. --- 제3장
테메레르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얼굴 주변의 막을 활짝 펼치며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일종의 경고였다. 테메레르는 야생용들에게 곧장 신의 바람을 쓰진 않고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릴 뿐이었지만 그 진동만으로도 로렌스는 뼈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야생용들도 그 진동에 움찔했고 얼굴에 주홍색 반점이 있는 대장 용은 뿔을 얼른 늘어뜨리며 다른 야생용들과 함께 놀란 새처럼 골짜기 위쪽으로 휙 날아올랐다. 당황하고 실망한 테메레르가 말했다. “흠. 난 아직 공격도 안했는데.” 주변의 산맥을 타고 테메레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계속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하나씩 겹쳐지며 원래 소리보다 증폭되어 우레처럼 울려퍼졌다. 그리고 산봉우리 부분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 위에 얹혀 있던 눈과 얼음판이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눈과 얼음은 원래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장엄하고 우아하게 내려오다가 별안간 거미줄처럼 쫙 갈라지며 산비탈을 가로질러 확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구름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맹렬한 속도로 산비탈을 타고 야영지 쪽으로 내려왔다. --- 제4장
그 순간 로렌스는 그 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바데나워가 발작적으로 로렌스의 팔을 꽉 움켜잡으며 소곤거렸다. “나폴레옹입니다.” 충격을 받은 로렌스는 주변을 살피고는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덤불 가까이 목을 내밀었다. 영국 신문에서 늘 묘사하던 것과는 달리 저 코르시카인은 특별히 왜소한 편은 아니었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활기찬 표정으로 커다란 회색 눈을 빛내며 서 있는 나폴레옹. 그의 얼굴은 찬바람을 맞아 약간 홍조를 띠고 있어서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 제13장
별안간 케인스가 테메레르에게 날카롭게 소리쳤다. “맙소사. 남은 고기 다 먹지 말고 남겨둬!” 꿍쑤가 마지막 남은 고깃덩어리를 테메레르의 입에 막 집어넣으려던 참이었다. 테메레르가 케인스에게 따졌다. “왜 안 돼? 아직 배고픈데.” “망할 놈의 용알이 부화하고 있단 말이다!” 케인스는 이미 카지리크 알을 둘러싸고 있던 비단 천을 찢고 풀어내는 중이었다. 곧 붉은 바탕에 초록색과 노란색 반점이 박힌 반짝이는 알이 드러났다. 케인스가 승무원들에게 말했다. “거기 멍청히 서 있지 말고 와서 도와!” 그랜비와 다른 장교들이 케인스 쪽으로 뛰어가는 동안 로렌스는 나머지 승무원들에게 비단에 싸인 아칼테케 알을 테메레르의 배 쪽 그물에 싣도록 지시했다. 더 이상 실을 짐은 없었다. 테메레르가 알에게 소리쳤다. “아직 나오지 마!” 하지만 카지리크 알은 이미 심하게 앞뒤로 흔들거리고 있어서 땅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닐 판이라 그랜비와 릭스, 페리스가 꽉 붙잡아야 했다.
로렌스와 테메레르 일행이 중국을 출발하려는 순간, 영국 정부로부터 긴급명령이 날아온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부터 귀한 용알 세 개를 구입했으니, 이스탄불에 들러 영국으로 가져오라는 것. 이에 일행은 서둘러 날아가지만 고비사막을 넘어 이스탄불에 이르기까지 야생용들의 습격과 산사태 등 험난한 여정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이들보다 앞서 이스탄불로 향했던 용 리엔은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프랑스 군과의 전투 도중 로렌스는 나폴레옹을 눈앞에서 목격하는데……. 중국에서 터키로 이어지는 이 위험한 여정은 1807년 단치히 공성에서 절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