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랜킨의 빌어먹을 가문이 나서서 거의 5년째 정부에 대고 새끼용을 배정해달라며 짖어대고 있어. 포상을 안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그에게 새끼용을 내주기로, 적어도 새끼용의 주인이 될 기회를 한 번은 주기로 했어. 지금 내가 먹이를 공급해줘야 할 새끼용이 스물여섯 마리나 되는데다가 스페인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해서, 누구든 나대신 그 자를 곁에 두고 참아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아무래도 나보다는 자네가 낫겠더라고.
테메레르의 귀가 솔깃해질 만한 얘기를 하나 해줄게. 스페인의 상황이 지금 심상치가 않아. 나폴레옹이 바보도 아닌데, 왜 스페인 남부 해안을 따라 십여 개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스페인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해로를 통해 스페인에 물자 공급을 못하게 막으려는 수작인 것 같다고 멀그레이브 경이 말하더라고. 그렇지만 만약 그런 목적이면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해안 마을에 불을 지르는 편이 낫겠지.
“알에서 깨어난 새끼용의 머리에 두건을 씌워놓으면 당장은 날아가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다 잠시 후에 두건을 벗겨내면 새끼용은 눈이 부셔서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태가 되죠. 그때 비행사가 앞에 고기를 놓아주면 그걸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 하네스를 몸에 착용시켜도 얌전히 따르게 되는 겁니다. 손쉽게 다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한데, 새끼용을 소심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어요. 자신이 왜 그 비행사를 따라야 하는지 확신을 못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가슴팍에 매단 작은 용알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아프도록 꺾었다. 지금으로선 그 용알만이 테메레르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용알을 감싼 유포가 비에 젖어 번들거렸다. 문득 안장이 단단히 조여지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몸이 빙글 돌았고, 머리가 앞다리 사이로 거의 들어갈 뻔했다. 맹렬한 오렌지색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지상에 깔린 푸른 연기가 아가리를 벌렸다. 몸이 몇 바퀴 더 돌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날개를 펼칠 수가 없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09년. 프랑스 용들에게 전염병 치료약을 내준 죄로 반역자로 몰린 영국 공군 로렌스는 죄수 신분으로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 공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기초가 될 용알 3개를 받아 들고 테메레르와 함께 얼리전스 호를 타고 유배길에 오른다. 한편 예전에 잔인하게도 자신의 용 레비타스를 홀로 죽게 내버려두었던 랜킨 대령도 얼마 후 그 용알 중 하나를 차지할 요량으로 식민지로 들어온다. 평온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낼 줄 알았던 로렌스와 테메레르 일행은 뜻밖에도 식민지의 복잡한 갈등 상황에 휘말리게 되고, 그 난감한 상황을 피해 떠난 내륙 탐사 도중 그만 용알 하나를 도둑맞고 만다. 그때부터 내륙 탐사는 도둑맞은 용알을 되찾기 위한 여정으로 뒤바뀌는데……. 거대한 암석산 울루루와 소금호수, 전설상의 괴물 버닙과 큰바다뱀,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갈등과 대립이 각국의 이권다툼 앞에서 첨예하게 부딪히는 미지의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서바이벌! 미지의 땅에서 다시, 새로운 모험의 서막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