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작품으로는 『주작의 제국』, 『가시나무』, 『호접무』, 『용신의 신부』등이 있으며 현재 수면 위로 나오려고 기지개를 켜는 중. 하지만 늦둥이 딸보는 재미로 결과는 장담할 수 없음. 차기작으로 용신의 신부 시리즈 중 흑룡의 이야기를 편집자의 눈치를 봐가며 열심히 손보는 중.
“평생을 같이 하자 그랬잖아. 삶도 죽음도 함께라고. 그러면서 왜 온갖 고통은 자기 혼자 다 짊어지고 가려고 하는 거야. 왜 모든 게 자기 잘못인 거냐고. 내가 왜 곁에 있는데. 왜 내게 안겨 울려 하지 않는 거야. 기쁨만 함께 하기 위해 당신 곁에 있고 싶은 게 아니야. 내 마음을 왜 몰라, 왜 이렇게도 무심한 거야.” “내가 바보라서 그렇다.” 돌연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여라는 울음을 멈추었다. “바보인 건 알긴 아나 봐요.” “그래, 어쩔 수 없는 바보라는 건 이번에 비로소 알았다.” 여전히 우울한 안색이었지만 재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흥, 바보니까 그렇지. 바보라서 머리가 나쁜 거잖아.” “그래, 꼬맹이. 내가 네 속을 그리 긁었으니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하려무나.” “말로 때우려고요? 흥이네요.” “그럼 뭘로 네 용서를 받아야 하지? 난 꼬맹이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여전히 말만 앞세우지. 지금까지는 봐줬지만 이제부터는 안 돼요, 알았어요?” 여라는 아직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좀 앉아도 되나?” 그러면서 이미 털썩 앉아버린 재사에게 여라는 흥하며 코웃음을 날렸지만 막지는 않았다. “네 말대로 난 바보라서 뭐든 너무 늦게 깨닫곤 하는구나. 꼬맹이 네 마음이 넓어서 그렇지, 안 그랬다면 벌써 내 곁을 떠나버렸을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네게 고맙다고. 네게 너무나 고마워. 말로 다 할 수 없이 말이다.” 잠시 목이 멘 듯 재사가 말을 끊자 여라는 서서히 마음이 풀려갔다. “그래서요? 고맙다는 말을 하면 내가 다 헤헤거리고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아니,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지. 네겐 용서를 구할 일이 너무 많아서 평생을 네 곁에 머무르며 그 벌을 받아야겠다고 말하는 거야.” “것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거라니까.” 그러나 이미 여라의 입가엔 미소가 함빡 번져나갔다. “호동의 일…… 참 잊기 어렵더구나. 이젠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고, 그때 일은 호동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어. 어찌되었든 살았어야 했다. 살아서 죄를 받든 아니면 원비를 죽이든 말이지.” “그게 안 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차라리 내 탓이 더 쉬운 사람들이요. 뭐 멀리서 찾을 것도 없네요.” “아얏! 그러면서 왜 내 허리는 꼬집는 거냐?” “흥, 모르면 진짜 바보라니까.” 그 말에 재사는 빙그레 웃으며 여라를 확 껴안았다. “아, 저리 가요. 징그러워 죽겠어. 어디서 막 껴안고 난리예요?” “좋으니까 그렇지, 꼬맹이. 말해 봐라. 정말로 내가 널 떠났으면 좋겠어?” “흥, 떠나든지 말든지 내가 알게 뭐람.” “호오, 내가 다른 여인과 혼인해서 살아도 괜찮다는 거야?” “뭐, 뭐라고요? 기가 막혀라. 그러기만 해봐요. 나 죽고 당신도 죽을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