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건물,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이 창밖으로 휙휙 지나갔다. 해나는 밴 차창을 멍하니 응시했지만 정말로 뭔가를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귀는 확실히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해나는 자기가 왜 여기 있는 건지 정말 궁금했지만 물어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제일 뒷줄에 말없이 앉아서 앞자리에 앉은 두 어른의 대화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애썼다. 정말 궁금해서 속이 메스꺼웠다. 적어도 무슨 일인지라도 알면 아무리 나쁜 일이라 해도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나쁜 일이 생길 거라는 사실을 아는 게 나았다. 하지만 지금 해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p.46
아침 예배에서 해나는 최대한 조용히 앉아서 책을 빤히 보고 있었지만 읽지는 않았다. 양심이 그녀를 꾸짖었지만 해나는 집중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말씀은 그냥 흘러 들어왔다가 흘러나갈 뿐이었고, 자신이 한 단어도 읽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페이지가 그냥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예언자 님의 말씀인 ‘교훈집’은 정신 건강에 무척 중요했고 사탄과 악마들을 멀리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지만 해나의 마음은 자꾸만 달아났다. 해나는 초조해하지 않으려고,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두 시간이 지나 거실은 텅 비었다. ---p.86
로건이 맡긴 일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선택받은 자녀들’이 대부분 평화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상당히 줄어들었다. ‘선택받은 자녀들’은 900명 넘는 신도가 집단 자살한 존스타운 사건과 달리 대량 살상을 거부했고, FBI와 대치했던 다윗교와 달리 심판의 날에 대비해 무기를 저장하지도 않았다. 그들 역시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기는 했지만 엑스맨 같은 초능력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p.131
데이비드 로는 아이를 납치해서 ‘선택받은 자녀들’로 다시 데려왔으며 해나에게는 아빠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진짜 가족과 비슷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먼로가 이번 일을 하기 위해서 데이비드 로의 위치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벌이 방에 들어왔을 때 그런 것처럼 그가 어디 있는지 알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식사가 서서히 끝나가고 여러 가족이 식당에서 빠져나갔지만 일라이저의 가족은 남아 있었고 먼로도 같이 남았다. 그녀는 이 순간에 집중했지만 내면의 긴장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먼로는 해나를 찾고 싶었다. 돌아다니고 싶었다. 정찰하고 싶었다. ---p.245
의식이 천천히 돌아왔다. 몽롱한 감각이 돌아오면서 어둠을 헤치고 먼로를 완전히 깨웠다. 그녀는 앉아 있었다. 턱이 가슴에 닿았고, 발은 철제 접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으며, 손은 뒤로 돌려서 고정되어 있었다. 수갑이 아니라 박스 테이프나 전선을 묶는 끈이었다.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밧줄. 가는 밧줄. 수많은 밧줄. 멍청한 것들. 그녀의 눈에 감겨 있는 것은 뭔지 몰라도 단단했고,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왼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근처 탁자에 앉은 남자들이 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 크기나 하는 말을 들어보니 카드놀이나 다른 오락거리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남자들-어조로 구분해볼 때 네 명이었다-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p.370
나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눈물은 사라지고 분노가 대신했다. “아빠가 어디 계신지 알아내려는 거라면, 나한테서는 절대 못 들을 거예요. 난 아빠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알아도 말 안 할 거예요. 절대 안 해요. 그건…….”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 애쓰는 것처럼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건 하나님과 예언자 님을 배신하는 거예요.” “알았어.” 먼로가 말했다. “그럼 엄마에 대해서 얘기해보렴.” “어느 엄마요?” “진짜 엄마.” 그러자 해나는 조용해졌다. 부엌에서 보았던 자신감 있고 도전적인 아이도 아니었고, 조금 전의 화가 난 아이도 아니었다. “엄마는 날 원하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엄마가 기억나니?” 해나가 울기 시작했다.
8년 전, 다섯 살 난 해나는 학교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선택받은 자녀들’이라는 종교 단체의 폐쇄된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때부터 이 단체의 지도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해나를 숨기고 납치범을 보호해 왔다. 이제 ‘선택받은 자녀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달아나 바깥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꾸리던 사람들은 해나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 바네사 마이클 먼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먼로는 공동체에 침투하여 소녀를 구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으로 들어간 먼로는 해나를 영영 잃기 전에 예측할 수 없는 종교 단체의 추종자들과 위험한 공범자들, 그녀에게 일을 의뢰한 성급한 생존자들 사이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점점 더 커지는 자신의 폭력적인 본성에 맞서 싸워야 한다. 결국 먼로는 해나를 구하기 위해 종교 단체의 ‘안식처’에 침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