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만들어서 나만의 커리어를 만들어 보자.’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다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그야말로 필사적인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 이후로는 회사에 지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취업을 위해 애쓰는 대신, 내가 만든 콘텐츠로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 p.24
변화는 균열을 가져온다.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갈 때 생기는 균열에 대해 콘텐츠가 접착제 역할을 하며 혼돈을 줄여 준다. 균열이 생기는 곳마다 콘텐츠가 필요하다. 혼돈 속에서 점차 질서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콘텐츠의 일이다. --- p.71
양질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는 건 당연하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콘텐츠들에 반응하기에 바빠서 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자꾸 어려워진다. 취향의 확장이지만 콘텐츠의 공습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소비, 생산적 소비 그리고 바로 생산’의 단계다. --- p.112
직장인들이 회사에 대해 갖는 생각은 한 마디로,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였다. 내 것이라고 하기에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퇴사학교에서 만난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회사 프로젝트를 큰 성공으로 이끌었고 인사고과 점수도 좋았지만, 그 결과물과 실행 과정을 회사 밖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 p.129
좋은 소식은 대다수 사람들이 콘텐츠 무자본으로 출발하며, 무자본이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건축보다는 정원 가꾸기와 닮았다. --- p.141
그렇게 받아 적기만 하면서 내 생각이 평범해지는 사이에 어느 순간, 세상이 묻기 시작했다. ‘너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뭐야?’, ‘너에게는 어떤 콘텐츠가 있어?’ 난감할 수밖에 없다. --- p.180
세상은 나에게 외주 일을 주지 않았다. 내 경력은 일감을 외주 받기엔 불충분했다. 대신 나는 세상으로부터 생각을 외주 받는 것도 그만뒀다. 거기서부터 내 콘텐츠가 시작됐다. 남의 생각에 시중드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 p.194
직장인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회사와 일대일 대응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콘텐츠로도 살아가는 일은 세상과 ‘일대다一對多’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흐름이 본격화되어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고 이름 붙여졌다. --- p.240
밀레니얼은 감추지 않는다.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거기에 드러내고 허물없이 대화한다. 브런치와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와 웹툰을 살펴보라. 또 거기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그들이 콘텐츠를 매개로 펼치는 공감의 소통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디지털 도구에 좀 더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 p.264
꼰대들이 이렇게 수난을 겪는 데는 이유가 있다. ‘꼰대’라고 하면 고압적인 태도, 원치 않는 조언 세례, 지나친 오지랖, 자기만 옳다는 믿음, 공감 능력의 부재 등 여러 특징을 꼽을 수 있겠다. 내가 이해하는 꼰대란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 세계가 유일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