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욕망은 왜 끝이 없는가. 돈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갑이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은 분명히 물질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돈의 표시일 뿐 돈 그 자체는 아니다. 돈을 숭배하는 풍조를 가리켜 ‘물질만능주의’라고 표현하는데, 본질을 놓친 개념이다. 우리가 만일 물질을 추구한다면 음식이나 옷을 끝없이 확보하고 비축해야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을 ‘무한히’ 축적하는 사람을 가리켜 이 세상 누구도 비정상이라고 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욕망은 맹목적이다. 돈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의 본질은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Georg Simmel)은 『돈의 철학(Philosophie der Geldes)』이라는 책에서 “추상적이고 보편타당한 매개형식”이라는 개념으로 그 핵심을 통찰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는 동물로서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익명적인 환경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빈번하게 교섭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킨다. 전통사회에서라면 오랫동안 맺어온 교분과 신뢰가 그 바탕이 되겠지만, 현대의 도시에서는 인격적인 관계가 전혀 없이도 교환과 협업이 이뤄진다. 그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돈이다. 점점 더 많은 상황에서,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많은 것을 돈으로 얻을 수 있다.
돈은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다. 개인과 세계를 묶어주는 사회 시스템이다. 근대사회 이후 그 작동의 범위가 급격하게 넓어지면서 돈의 힘이 점점 막강해졌다. 우리는 그 무형의 기호를 통해 유형의 물질을 획득할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조차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인간적으로 굴복시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돈은 인류가 만들어낸 매우 희한한 발명품이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있는 객관적인 제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마음과 존재에 심층적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돈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캐묻고자 한다. --- pp.6~7
돈은 개인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두는 문제다. 돈의 액수만 숨기는 것이 아니다. 돈에 대한 나의 느낌이나 욕망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리고 돈이 자신의 삶과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깃들어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명료하지 않다. 매스컴에서 돈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일상에서 돈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지만, 돈과 삶의 관계를 성찰하는 언어는 익숙하지 않다. 『돈의 인문학』은 그 공백을 겨냥한다. 돈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대면하고 직시하는 것은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지름길일 수 있다. 사랑 내지 섹스, 그리고 죽음과 함께 돈이 인문학의 핵심 주제가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돈에 대한 경험과 생각과 느낌을 꺼내놓고 비춰보면서 우리는 자아의 내밀한 세계를 포착할 수 있다. --- p.9
인문학은 자아와 세상을 성찰하도록 지성과 감성을 연마하는 수행(修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언어는 그러한 시야를 열어주는 핵심 매체가 된다. 이 책은 돈을 둘러싼 경험과 마음을 묘사하면서 거기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보려 한다. 점점 더 많은 가치들이 돈으로 수렴되어 우리의 궁극적 관심에 대한 질문을 봉쇄하는 시대에, 그 벽을 깨고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려 한다. 인간에게 돈은 무엇인가. 개인은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이며, 인간관계에서 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사회는 돈의 시스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인문학적 사유가 지금 당면한 금전적인 어려움에 직접적인 해결책을 주지는 못한다. 하루하루 피 말리는 ‘쩐의 전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사치로 보일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융자금이 지구촌을 휘젓고 다니면서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뒤흔드는 세상에서 성찰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생각의 끈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더욱 무기력하게 돈의 위력에 휩쓸리고 빨려들게 된다. 삶의 필요를 냉정하게 헤아리지 않으면 한없이 증식되는 욕망의 포로가 되어 생활은 계속 고비용 구조로 치닫는다. 대다수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머니게임에 헛되이 뛰어들지 않으려면, 세태가 부추기는 대박의 환상을 직시해야 한다. 마음을 투명하게 읽어내야 한다.
인문학은 당장의 상황을 바꾸어주는 데 큰 힘이 되지는 못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거기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돈과의 관계를 리모델링하는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빗나간 화폐 질서,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꾸어가는 초석이 된다. 사회의 변혁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실천을 매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성찰은, 삶의 바탕을 더듬으면서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는 운동의 시발점이다. 이 책이 그 작업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pp.110~111
우리는 그동안 돈을 최대한 획득하는 방법에만 골몰하느라, 그 돈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는 소홀했던 편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을 벗어난 것은 커다란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근면과 성실로 이뤄낸 자랑스러운 성취다.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부(富)가 막대하게 불어나면서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 상승 이동의 기회가 무한히 열리는 듯한 상황에서, 우리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에 매달려왔다. 그 결과 한국인의 노동 시간은 세계 최고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개발도상국의 귀감이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식구들끼리 대면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가족관계가 서먹하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대가가 있다. 삶과 사람의 가치가 점점 돈으로만 환산되고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노동을 통해 부(富)를 창출하는 상황에서는 사람을 어느 정도 귀하게 여겼다. 그런데 냉전 해체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어 발흥한 ‘금융자본주의’가 범지구적인 지배력을 강화하고, IMF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에 그 위세가 한국에서도 맹렬해지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에서, 부가가치의 원천은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여겨진다. 사람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 pp.267~268
맹신하던 시스템을 의심하고 불신하던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돈으로 매개되지 않고도 이어지는 관계의 회로가 열린다. 거기에서 타자의 숨겨진 욕망과 나의 잠재된 능력이 접속하여 멋진 신세계를 빚어갈 수 있다. 금융공학이 거는 마법의 주문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는 삶의 연금술이 거기에서 터득된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존재의 위대함을 배우며 ‘정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돈의 인문학인가. 나를 끊임없이 모독하는 힘에 굴복하지 않는 얼은 어디에 있는가. 천박함과 난폭함으로 치닫는 세계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항체를 갖고 싶다. 생애의 드넓은 기쁨을 누리는 시공간을 만나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소망을 더듬으며 질문하고 상상했다. 경제의 숫자와 시인의 언어가 닿는 접점을 모색했다. “가난한 사람은 책의 힘으로 부유해질 수 있고, 부자는 책의 힘으로 귀해질 수 있다.” 타이완의 어느 서점에 붙어 있는 문구다. 인문학은 삶의 부유함과 존귀함을 발견하는 공부다. 돈과 사람의 관계를 되묻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가치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을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 pp.270~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