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주동자로 찍혀 제적과 동시에 군에 끌려가 공수부대에 떨어졌다면 공포에 질리거나 크게 상심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달랐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군대생활은 그의 인생에서 희망으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아보지 못했거든요. 고교 땐 정학을 당했고, 대학에선 제적도 당했죠. 그런데 군대가 요구하는 기능은 신기하게도 잘하는 거예요. 사격, 수류탄 던지기, 전투수영까지 생전 처음 하는 일인데도 잘 해냈죠.” 전투수영이란 군화 신고 탄띠에 총까지 어깨에 멘 상태에서 헤엄치는 침투 훈련의 하나다. 공수부대 들어가기 전에 이런 수영을 해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이고 다들 어려워하는 게 당연한데 문재인은 그 상황을 즐겼다. 공수부대 특성상 연중 절반을 야외에서 훈련하며 보내는데도 “난 영내 생활보다 야영이 좋아” 하며 받아들였고, 그렇게 고되다는 천리 행군도 “미처 가보지 못한 산과 강, 마을을 볼 수 있는 기회”라며 기꺼이 맞았다. 그야말로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즐기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공수부대 훈련 도중 찍은 사진 한 장이 상징적이다. 인터넷에 공개돼 폭발적 인기를 끈 이 사진에서는 데모하다 끌려온 약골 대학생의 기색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다. 훈련복장에 베레모를 쓰고 보조낙하산을 가슴에 안은 청년 문재인은 듬직한 군인의 모습, 그 전형이다. 특히 이 사진은 이명박 정부 고위각료 중에 병역면제자가 많다는 사실과 대비되면서 문재인에 대한 카리스마와 신뢰감을 더욱 높여주었다.---문재인의 터닝포인트
1000만 달러, 우리 돈 약 120억 원이라는 금액도 상상 이상인데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재정난을 생각하면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안철수는 일말의 갈등도 없이 거절했다. 그 이유를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상업적 이익만을 따지는 외국 기업에 회사를 팔면 우리나라 고객 모두가 피해를 봅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쫓겨나고 고객은
백신을 사는 데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돈보다 인간관계, 성취 욕구 등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만약 그때 1000만 달러에 눈이 멀어 회사를 팔았다면 오늘날의 안철수는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신뢰와 원칙을 지킨다는 안철수 브랜드의 진가가 맥아피 때문에 드러난 것이다. 이 이야기의 전파 경로를 더듬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안철수는 맥아피의 제의를 거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했고, 직원들에게 내막을 상세히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선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서울의 한 기자가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안철수가 맥아피의 제의를 거절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삼성SDS 사람을 만나 여담으로 듣고 기사로 쓰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안철수는 일개 기업 경영자에서 지도자급 인사로 국민들 사이에 인식되기 시작했으니, ‘1000만 달러 유혹의 물리침’은 그의 인생에서 성공으로 가는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다. 인생의 본질은 좋은 시기가 아니라 어려운 시기에 있다는 그의 말이 다름 아닌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 예화가 된 것이다. 그 후 안철수의 행보는 ‘착한 성공’의 연속이다. 안철수연구소 창립 10주년이 되던 2005년, 주식 일부를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면서 홀연히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나, 2011년 자신의 보유주식 절반을 사회에 기부해 재단을 만든 것은 그 성공의 결실에 다름 아니다. ---안철수의 터닝포인트
만약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숱한 패배자를 다시 한 번 기죽이는 승자들의 화법 아닌가. 이렇게 비꼬아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인생 피곤하게 사는 셈이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잠을 이기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 이길여가 유학 시절 잠의 유혹과 싸우면서 수없이 마음속으로 되새긴 격언이다. 잠이 올 때 잠자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아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잠이 쏟아지더라도 내일의 꿈을 향해 참고 이겨낼 때 자기 행복이 다가온다. 어떤 고난이라도 내일의 성취를 위해 겪는 오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매 순간이 행복해진다. 이길여의 인생에서 행복으로 가는 터닝포인트는 매 순간 마음먹기인 셈이다.
이종탁: 보통 사람은 좌절과 실패, 회한이 있게 마련인데요.
이길여: 그렇게 말하면 나에게도 물론 있지요. 전체적으로 봐서 행복하다는 거지, 좌절이나 실패가 왜 없겠어요? 다만 누가 콕 집어서 얘기하기 전에는 실패 같은 거 생각이 안 납니다.
실패의 기억이 없을 수 없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태여 떠올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안 좋은 기억은 되도록 묻어두고 좋은 기억은 자주 되새기며 에너지로 삼는 것, 그게 이길여식 긍정의 삶이다.---이길여의 터닝포인트
“남보다 5분 먼저 일어나고 5분 먼저 행동하라.” 조정래의 생활 철학이 된 ‘5분 먼저’는 그 후 매사에 실천적으로 적용된다. 그는 20년 이상 신문, 잡지에 소설을 연재했지만 원고를 펑크 내거나 송고를 늦게 해 제작에 차질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시간에 쫓겨 원고를 날림으로 쓰는 법도 없다. 편집자의 독촉이 없어도 언제나 때가 되면 깔끔한 원고를 어김없이 보낸다. 창살도 없고, 지켜보는 간수도 없는 글감옥에서 완전한 원고를 제시간에 생산, 공급하려면 미리 준비하고 실천하는 자기만의 열정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조정래의 모든 작품은 ‘5분 먼저’의 산물이고, 그 5분 먼저의 열정은 수돗가 물지게에서 나온 셈이다. 그러니까 물지게는 조정래의 인생에서 열정으로 가는 결정적 터닝포인트다. 그 시절의 가난에 대해 조정래는 이렇게 정의하기도 한다. “나를 키운 건 가난이었고, 가난이 나의 힘이었다.”
---조정래의 터닝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