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노르망디에서 태어나 1870년 보불전쟁에 참가했다. 그 뒤 파리로 진출하여 해군부와 문교부 관리직을 맡았다. 또한 모파상의 어머니가 플로베르와 오랜 친구여서 모파상은 대가의 지도를 받아 문학의 꿈도 키울 수 있었다. 그때 그는 시, 극, 소설 등을 습작하면서 사실주의의 중요한 기법을 엄격하게 배울 수 있었다. 소설집 《메당의 저녁》(1880)에 발표한 중편 〈비계 덩어리Boule de Suif(1880)〉는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스승 플로베르에게서도 격찬 받았다. 화려한 데뷔를 한 뒤 글쓰기에만 전념하면서, 장편 6, 단ㆍ중편 100여 편을 남기고는 근대 자연주의 소설가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대표적으로 《텔리에 집》(1881), 《피피 양》(1882), 《두 친구》(1883), 《어느 인생》(1883), 《벨 아미》(1885), 《목걸이》(1885), 《피에르와 장》(1888), 《오를라》(1885) 등 약 300여 편의 소설을 썼다. 그는 스승 플로베르에게 엄밀히 배운 사실주의 기법을 토대로 하여 객관주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낭만주의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과잉된 자기 표현이나 과장된 표현을 배제했다. 또한 허구성이 짙은 소설 경향을 따르지 않았으며, 콩쿠르 형제의 섬세하고 예술적인 문체와도 거리를 두었다. 그는 객관적 어조와 묘사의 문체를 되도록 유지하면서 인간 내면에 파고들어 건조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묘사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을 한데 모으면 1870~1890년의 프랑스인의 생활상이 포괄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화려한 성과에 비해 개인사는 그리 좋지 않았다. 선천성인지 방탕한 생활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20대 초반 매독에 걸려 평생 고생했다. 이때 얻은 신경쇠약 탓에 극심한 고통에도 시달렸다. 심지어 1892년에는 자살도 시도했으며 이 탓에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893년 병원에서 삶을 끝낸다. 그의 나이 4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