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남이 얼굴이 무슨 살색이에요? 살색이지. 그리고 지 엄마도 보나마나 갈색일긴데 살색이잖아요. 제가 거짓말 했어요? ---p.107
김배남을 연구하면서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바로 김배남이 살인마로 돌변한 부분이다. 대개 10대 중후반부터 증폭하는 공격성과 잔인성은 자신보다 약한 어린아이를 괴롭히거나 동물 학대, 방화 등으로 예행연습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개나 고양이를 불에 태우거나 돌을 매달아 물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아이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며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자신을 학대한 사람에 대한 복수를 동물에게 대신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전조가 된다. 하지만 김배남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p.211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운 잡종새끼’라며 땅에 침을 뱉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 손가락질하며 나를 쫓아다니는 아이들, 나에게서 마치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처럼 코를 잡고는 피해가는 사람들....... ---p.221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그 난쟁이는 저와 할머니를 때리지 못했어요. 저는 그 난쟁이가 저를 끝까지 때리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어요. 뭔가가 터질 것 같았거든요. ---p.245
그 인형을 인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살아가면서 인형이 열려서 속에 있는 가장 작은 인형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아니면 술에 취해 의식을 잃었을 때 인형이 열리면서 그 속에 있는 인형이 밖으로 뛰어 나온다. ---p.309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악마를 죽이거나 아니면 기적을 바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기적은 너무 늦게 일어난다. ---p.311
궁금하다. 푸른 바다에 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흰수염 고래가 자신에게 마구 작살을 꽂는 사람들을 어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죽어 가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김배남. 결혼이주여성 우웬 하이앤과 경남 김해시의 한 농촌마을 농부 김영철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저 따뜻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과 이웃들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고 싶었던 한 아이였다. 아니 사실은 그 평범한 일상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한국인이었다. 분명한 한국인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한국인으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 수많은 멸시와 모멸감은 일상이 되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도 한정 되었다. 1000만 원짜리에서 태어난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나는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하는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정해져 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그 어디에도 서 있을 곳이 없는 자신을 보게 되는데....... 이대로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 옳고 그름도 모르겠다. 진실을 말해도 늘 이웃은 거짓으로 왜곡해 듣고, 사실 주위의 일상은 옳고 그름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불편하고 덜 불편함이 있을 뿐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 갈 사람도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인 타인에게는 별 관심 없는 일상의 반복. 우연히 알게 된 눈빛의 변화. ‘내 능력으로 눈빛을 변화시킬 수 있다니!’ 내 힘으로는 도저히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쌓인 벽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처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나를 바라보는 온기가 도는 사람의 눈빛을 보기 전까지....... 이 이야기는 김배남의 3시간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