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티드리프!”
리프포는 숲 속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대답이 없었다. 이 현명한 의무관 고양이는 꿈에서 벌써 여러 번 그녀를 이끌어 준 적이 있었다. 바로 지금이 리프포에게 스파티드리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스파티드리프, 어디 있어요?”
리프포는 다시 불렀다.
나무들은 바람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늘에는 먹잇감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리프포의 가슴을 발톱처럼 할퀴었다.
갑자기 낯선 고함 소리가 귓가에 울리면서 꿈속으로 들이닥쳤다. 리프포는 눈을 번쩍 떴다. 잠시 동안 그녀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털은 차가운 바람에 일렁였고, 발밑에는 부드럽게 이끼가 깔린 보금자리 대신 이상하고 차갑고 반짝거리는 거미줄 같은 망이 있었다. 당황한 그녀가 일어서자 또 다른 반짝이는 망이 귀를 스쳤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은 아주 작은 공간으로, 높이는 그녀의 키보다 클락 말락 한 곳이었다. 리프포는 깊은 숨을 들이키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리프포는 벽과 바닥과 천장이 차갑고 단단한 망으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굴에 갇혀 있었다. 겨우 몸을 펴고 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었고 그 이상은 없었다. 그 공간은 나무로 만든 작은 두발쟁이 보금자리의 모든 벽마다 줄지어 있는 다른 굴들과 함께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리프포는 별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별족이 그녀를 지켜본다는 것을 느끼면서 위안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위로는 가파르게 경사진 지붕만이 보일 뿐이었다. 빛이라고는 보금자리의 한쪽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달빛뿐이었다. 리프포의 굴은 다른 굴들의 맨 위에 있었다. 바로 아래 굴은 비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어두운 색깔의 털 뭉치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고양이일까? 냄새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숲에 사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그 형체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으므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만일 살아 있다면. 리프포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다시 고함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보았지만 소리를 질렀던 고양이는 이제 조용했고, 다른 굴에 갇혀 있는 고양이들이 가냘프게 울면서 발을 끄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코도 킁킁거려 보았지만 아무 냄새도 알아낼 수 없었다. 두발쟁이의 매캐한 악취가 보금자리를 채웠고, 거기에 두려운 기운이 물들어 있었다. 리프포가 발톱을 드러내자 반짝이는 망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별족이시여, 어디 계신가요?’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지만, 리프포는 이내 몸서리를 치고 발톱으로 바닥을 할퀴면서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드디어 깨어났네.”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프포는 벌떡 일어나 목을 길게 빼고 어깨 너머를 살펴보았다. 옆쪽에 있는 굴에서 얼룩무늬 털 뭉치가 움직였고, 두발쟁이한테서 물든 것이 분명한 애완 고양이의 냄새가 났다. 암고양이의 목소리에는 친절함이 묻어났지만 리프포는 너무 비참한 기분이 들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소렐테일과 사냥을 하는 동안 두발쟁이들에게 잡혀 이 끔찍한 장소에 끌려온 씁쓸한 기억이 밀려왔다. 그녀는 종족에게서 떨어져 암흑 속에 갇혀 버렸다. 절망감에 휩싸인 그녀는 코를 발밑에 파묻고 눈을 감아 버렸다.
더 멀리 떨어진 굴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리프포는 주둥이를 들고 공기를 맛보았지만 신더펠트가 상처를 소독할 때 쓰곤 하던 약초를 떠오르게 하는 톡 쏘는 냄새만을 맡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목소리가 다시 말을 했고 리프포는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여기서 나가야 해.”
그 고양이가 말했다.
또 다른 고양이가 보금자리의 저쪽에서 대답했다.
“어떻게? 나가는 길이 없다고.”
“여기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어!”
첫 번째 목소리가 강하게 말했다.
“여기 다른 고양이들도 있었어. 그 고양이들 냄새랑 그들이 풍기는 두려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뭐든 두려움에 벌벌 떨게 만들었던 일인 게 분명해. 우리도 냄새 흔적만으로 남기 전에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나갈 길이 없잖아, 쥐 대가리야. 잠 좀 자게 닥치고 있어.”
거친 대꾸가 들려왔다.
대화를 들은 리프포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안전하게 잠을 자려고 발톱을 세운 채 귀를 납작하게 눕히고 눈을 감았다.
리프포는 어색하게 발을 바꾸어 섰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뻤지만, 별족이 종족의 의무관 고양이가 아닌 자신과 교감할 거라 생각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별족은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종족들이 함께 숲을 떠날 게 아니라 각 종족이 저마다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걸까?”
파이어스타가 화를 내며 차가운 돌바닥에 발톱을 드러냈다.
“두발쟁이들에게 잡혔을 때 저도 같은 기분이었어요. 제가 그 냄새나는 우리에 갇혀 있는 동안 별족은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완전히 혼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종족 동료들이 저를 구하러 왔잖아요.”
그녀는 아버지의 침통한 눈빛을 마주 보았다.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하자 파이어스타가 눈을 크게 떴다.
“별족은 종족들이 함께하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을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서 네 종족 중의 하나인 존재가 되어 있어요. 둘도 셋도 아니고 넷이나 되는 종족들 중의 하나 말이에요. 그건 마치 먹잇감을 쫓아가서 숲 그늘에 몸을 숨기는 것처럼 본능적인 거예요. 다른 종족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들은 우리를 묶어 놓는 경계선과 차이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우리를 바람족과 강족으로부터 갈라놓는 그 경계선이 바로 우리를 연결하는 선이기도 해요. 별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연결선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일이에요.”
파이어스타는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네가 스파티드리프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를 보니 스파티드리프가 생각나는구나.”
말할 수 없이 감동을 받은 리프포는 눈길을 낮추었다. 지금은 아버지에게, 사실은 스파티드리프가 꿈에서 여러 번 나타나 이야기를 해 주었다는 말을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그녀를 스파티드리프와 친구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파티드리프는 지치지 않고 별들 사이를 걸어와 종족 동료들을 보살펴 준 옛 천둥족의 의무관 고양이였기 때문이었다.
리프포는 종족들이 마침내 숲을 버리고 떠날 때 스파티드리프와 다른 선대 전사들이 함께해 주기만을 온 마음으로 바랐다.
--- p.1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