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당연시하지만, 고대에는 민주주의보다 한 명의 절대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 체제가 훨씬 더 진보적인 체제였다(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양이 모든 면에서 서양을 앞섰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러나 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이다. 일찌감치 안정적인 권력구조와 사회구조를 갖춘 것은 여러 가지 발전을 가능하게 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사회의 틀을 바꾸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chapter 1 인문학의 시선으로 보는 정치 ‘혁명이 부재한 역사’ p. 20~22
재산의 상속은 그렇다 쳐도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까지 혈통적으로 상속시키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를 운영하는 자질이 유전적으로 결정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 역사의 기본적인 정치 체제였던 왕정이 근대에 들어 결국 붕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지금도 버젓이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은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고대적 왕조 체제에 불과한 게 아닐까? -chapter 1 인문학의 시선으로 보는 정치 ‘혈통에 집착한 대가’ p. 45~46
세금이 권리가 아닌 의무일 뿐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세금은 곧 ‘버리는 돈’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왕조시대의 왜곡된 세금 관념이 지금도 통용된다면, 기업이 절세를 넘어 탈세를 꾀하고 재벌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chapter 2 역사에 숨은 경제 ‘납세. 의무인가, 권리인가?’ p. 83
좌파와 우파는 각각 진보와 보수라는 실체적 의미를 가지는 듯하지만, 실상 진보와 보수 자체도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이다. 만약 정치 이념이 좌우파로 나뉜 사회에서 좌파가 제거된다면 얼마 안 가 기존의 우파가 또다시 좌우파로 갈릴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나 좌파와 우파는 존재하게 마련이고 또 존재할 가치와 필요가 있다. -chapter 3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p. 115
역사적으로 퇴행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도 파시즘을 경험하지 않은 탓이 크다. 민족주의가 나쁘다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거냐고?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은 당연히 나쁜 게 아니다. 다만 민족주의는 감성적 애국심과 달리 역사적 이념이다. -chapter 3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회 ‘대동단결의 허와 실’ p. 126
어느 시대든 당대를 지배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리더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자기 분야를 장악했다고 여기며 모든 정책과 행위를 기획하고 의도한다. 그러나 큰 호흡의 역사는 늘 그들의 기획과 의도에서 벗어나 마치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 흘렀다. -chapter 4 동·서양이 공존하는 국제 ‘역사는 무의식적으로 흐른다’ p. 168 종교개혁으로 교황이 세속의 영향력을 잃자 유럽 세계에서는 외교적 조정자가 사라졌다. 그 결과가 바로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에 휘몰아친 전란의 회오리다. 전란의 시기는 중세의 교황이 역할을 못하게 된 때부터 현대의 UN이 성립될 때까지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chapter 4 동·서양이 공존하는 국제 ‘중세의 UN과 현대의 교황’ p. 174
바투가 전선에 복귀해 원래의 계획을 추진했다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공국들을 쳐부수고 이탈리아로 방향을 돌렸을 것이며, 계속해서 프랑스와 에스파냐로 진군했을 것이다. 1250년대에 이르면 유라시아 전역이 방대한 몽골제국으로 통일되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한 기후라는 요인이 실은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꿀 수 있다. -chapter 4 동·서양이 공존하는 국제 ‘기후변동이 살린 유럽 세계’ p. 200~201
우리의 경우는 정식 국경선은 아니지만 휴전선이 어느 국경선보다도 강력한 장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전거가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도 국경을 넘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정작 답답한 나라는 스위스가 아니라 우리나라다. 마치 충청북도 주민들이 해안이 없어 답답해하지 않듯이 스위스 사람들은 해안이 없어도 답답해하지 않는다. -chapter 4 동·서양이 공존하는 국제 ‘국경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 그리고 통일 문제’ p. 203
몽골군은 원정의 목적지가 정해지면 단숨에 달려가 신속히 임무를 완수한 반면 십자군은 원정 도중에도 걸핏하면 샛길로 빠져들었다. 물론 십자군은 연합군의 성격이었고 몽골군은 단일 국적의 군대였으나 그 사실만으로 차이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명령으로 출발한 동양식 원정군과 약속으로 출발한 서양식 원정군의 차이다. -chapter 5 성찰과 통찰의 문화 ‘동양식 원정과 서양식 원정’ p. 248
남의 달력을 가져다 쓴 것 때문에 우리 역사에는 수십 일간의 공백이 있다. 1895년 조선의 고종은 일본의 압력으로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고 그해의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고쳤다. 문제는 그 때문에 1895년 11월 18일부터 그해 말까지의 날들은 우리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기간’이 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895년 11월 25일에 한반도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1895년 12월 7일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달력의 주권이 없었던 탓에 빚어진 이 웃지 못할 역사의 공백은 앞으로도 영원히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 -chapter 5 성찰과 통찰의 문화 ‘작은 달력 속의 큰 역사’ p. 255
시험을 통한 선발이라는 외양 때문에 과거제는 언뜻 객관적인 관리 임용 제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객관적이기는커녕 탄생 배경에서부터 시행 과정까지 철두철미하게 기존의 사회 체제와 지배구조를 온존시키기 위한 제도였다. -chapter 6 반성을 위한 교육 ‘대학 입시에 남아 있는 과거제의 유산’ p. 324~325
우리의 근대식 대학은 민간의 요구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기보다는 국가적 요구에 맞춰 탄생했다. 게다가 대학의 교육 내용도 국가 시책에 부응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미국처럼 유럽의 중세식 대학제도와 근대식 대학제도의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두 가지 종류의 대학을 조화시킨 미국과 달리 한 가지로 통일했고, 게다가 학비는 중세식을, 교육 내용은 근대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chapter 6 반성을 위한 교육 ‘동·서양의 대학과 등록금’ p.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