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은 어떤 연애 소설보다 더 지독하고 쓰린 아픔과 슬픔을 자아내는 연애 소설이고, 어떤 추리 소설보다 더 지독한 추리력을 요구하는 추리 소설이며, 작중 인물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잔혹할 정도로 파헤친 심리 소설로, 한국 소설이 드물게 가 닿은 최고의 경지를 보여 준다. 한 살인 용의자의 진술 행위 자체가 서사의 근간을 이루도록 설계된 『진술』은 그 도저한 형식 실험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 p.59 「장석주, '진술'의 힘 『진술』」중에서
이건 칠레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특별하게 벌어진 일이 아니다. 반대로 이 소설은 친숙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들도 세상에 내 말을 이해하는 수준 높은 인간이 모자란다고 투덜대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시궁창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고결하게 피해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세상에도 진부한 말이나 늘어놓는 낙담한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들의 세상에도 불멸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도덕이 얼마나 많은가? --- pp.71~72 「정혜윤, 왜 문학을 하는가? 왜 책을 읽는가? 『칠레의 밤』」중에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자본과 권력을 극복하는 노력이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 자체가 혁명의 과정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이 중요한 책은 아직까지도 방치되어 서가에서 먼지를 맞으며 외롭게 놓여 있다. 자본과 권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만족하는 독자들, 혹은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겠다는 일부 정치가들의 미사여구에 아직도 기대를 아끼지 않는 독자들. 아마도 그들에게는 스스로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나 불편했던 것이 아닐까. --- p.165 「강신주, 바로 당신이 메시아이고, 메시아여야만 한다 『일상생활의 혁명』」중에서
이 책은 한국의 '개발 중독'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보여 준다. 그것도 개발주의의 폐해를 진단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에 맞서는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보여 준다. 저자가 몸으로 겪은 생생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구체적 싸움의 진행,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하고 이후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는 과정까지를 완벽하게 담고 있다. --- p.170 「강인규, '개발 마피아'와 끈질기게, 그러나 즐겁게 싸우기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중에서
10년 가까이 '위안부' 수요시위와 정대협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행여 얼굴이 드러날까 마음을 졸였다는 윤순만 할머니.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자신의 이력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하는 그녀는, 그러나 끝내 사진 싣기를 거부합니다. 그녀의 얼굴이 실려야 할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윤순만, 김창연(가명), 아홉 분 중 두 분이 그렇게 텅 빈 공백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남겨진 침묵의 페이지는 그 어떤 말보다 우리의 마음을 시끄럽게 만듭니다. 부끄러움에 눈을 감고 귀를 막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할머니들이 기억으로 불러낸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얼굴 없는 증언, 가명의 역사를 강요하는 기억 상실의 현재, 그것이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 p. 「」중에서
189쪽 김이경, 마음으로 듣는 역사 이야기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2000년대는 경제 근본주의와 함께 문을 열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그게 2000년대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 광고가 새해 인사가 되는 걸 보면서 나는 한국 사회가 망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두 가지다. 부자가 되어야 행복하다는 것과, 네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안다, 그것이다. 즉 연초에, 네가 부자가 아니니까 네가 지금 불행하구나, 그런 잔인한 얘기를 인사로 나누는 나라, 그게 바로 우리가 지나온 경제 근본주의의 시대였다. 그 시기에 우리는 토건과 금융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국민의 세금을 건설업자에게 퍼 주고, 반생태적이며 반인간적인 경제 운용을 우리가 부강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 p.261~262「우석훈, 경제 근본주의에 균열을 내다 『경제학 3.0』」중에서
『삼엽충』은 독자가 과학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전부 담고 있다. 과학적 사실과 이론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열네 살에 손수 캐낸 삼엽충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평생을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지질학자 겸 삼엽충 전문가로 일한 저자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저자가 새 삼엽충에 이름을 지어 주려고 라틴어 사전을 뒤지는 모습, 오늘은 고생대 아프리카 대륙을 수천 킬로미터 이쪽으로 당겼다가 내일은 저쪽으로 밀었다가 하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과학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 p.304 「김명남, 진화의 비밀을 알려다오! 『삼엽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