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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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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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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2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5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900209
ISBN10 8932900205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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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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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꿈에서는 실제보다 부끄러움을 덜 탔다. 꿈에서는 그 애의 손을 잡고 그 애를 숲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같이 나무에 오르기도 하였다. 나뭇가지 위에서 그애의 옆에 앉아, 아주 가까이에서 그 애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애에게 옛날 이야기도 해 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그 애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을 때는 솜털이 많은 목덜미나 귓볼에 가만히 입을 대고 숨을 틀이마시기도 하였다. 그런 비슷한 종류의 꿈을 일주일이면 몇번씩 꾸었다. 참 아름다운 꿈이었다.
--- p.47-48
좀머 아저씨를 그 다음 번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로부터 5,6년쯤이 지난 후였다. 그 사이에도 물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그를 큰길이나, 호숫가의 수많은 오솔길이나, 텅 빈 들판이나, 숲에서 만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은 내게 별로 이상스럽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 아저시를 너무나 자주 보아 왔기 때문에 아저씨를 마치 눈에 익은 농기구를 보듯이 건성으로 보게 될 만큼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만남이었다.

그것은 마치 매번 놀란 눈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큰소리로 외치지도 않으면 하는 이런 말들과 마찬가지였다. 저걱 봐, 교회 종이 있네! 저기 학교 앞산 좀 봐! 저기 버스가 지나간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일요일에 경마장에 가다가 아저씨를 보면 나는 그냥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저기 좀머 아저씨 간다. 저러다가 죽겠다!
--- p.99,---pp.1-17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내 머리에는 그 길고 이상한 단어가 한참 동안이나 떠날 줄을 몰랐다. 밀폐 공포증....... 나는 그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면서 외웠다. <밀폐 공포증....... 밀폐 공포증...... 좀머 아저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어......그 말의 뜻은 아저씨가 방안에 감나히 있지 못한다는 것......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은 밖에서 돌아다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밀폐 공포증>이 있으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고......
--- p.42~44
어느 새 물이 아저씨의 어깨까지 차 올랐고 다음으로 목까지 차올랐지만...... 여전히 아저씨는 호수 안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아마도 바닥이 고르지 못해서였는지 아저씨의 몸이 불쑥 솟구치며 물이 다시 어깨까지 닿았다...... 그래도 아저씨는 그렇게 위로 솟구친 다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물이 다시목까지 찼다가, 목구멍까지 찼고 이어서 턱 위까지......

그제서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지르지도 못했다. <좀머 아저씨! 정지! 뒤로!>라고 소리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곳에서 황급히 뛰어가지도 않았으며, 아저씨를 구할 수 있는 배나 뗏목 혹은 구명용 공기매트를찾으려고 해 보지도 않은 채 저 멀리에서 가라앉고 있는 작은 점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 p113-114
살아가면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의 책무에 시달리고, 복잡한 논리에 얽매이고, 목표에 매달리고 또 스스로의 욕심에 포로가 되면서 순수함과 각자의 독창성이 빚어낸 고유의 인간성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년기의 풋풋한 추억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이 우리에게는 더 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리라
--- p.122
사람들이 그에게 어디에서 오는 중인지를 묻는다거나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마치 콧잔등에 파라라도 앉아있는 것처럼 마지못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뭐라고 혼자말을 중얼거리곤 하였는데, 그말은 불과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예를 들자면,<....아주바빠서이제학교뒷산을올라갔다가...호수를빨리빨리지나서...오늘아직시내에도꼭가보아야 하고...너무바빠지금당장너무바빠시간이없어....>, 그렇게 말해 놓고는 사람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디를 간다고 했느냐고 반문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어느새 지팡이의 직직 끌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그 자리에서 멀리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 p.27-28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히 10분 늦었다.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가 나를 한참 동안이나 울타리 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도중에 자동차를 두 대 만났으며, 네 명의 행인을 앞질러야만 했었다. 미스 풍켈 선생님 집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얼굴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삿대질을 해대고 있었다. [얼마나 늦었는지 알고 있기나 하니?] 선생님이 다짜고짜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는 시계가 없었다. 손목시계는 그 후 한참이 지난 다음 열 세번 째 생일에 처음 선물로 받았다.
--- p.74
너무나 황홀한 상상이었다! 그들에 대한 생각이 나를 아주 행복하게 하였다. 나는 나에 대한 칭찬 소리로 가득할 입관부터 문상객 접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새로운 절차에 따라 행사를 치르는 상상을 계속해 보다가, 급기야는 스스로 너무 감격한 나머지 비록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에 이슬에 맺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집 근방에서 있었던 장례식 중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의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십 년 동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슬픈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 p.93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 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 p.120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 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 p.120
내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되돌아갔는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한이 났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싹 가셨다. 웃기는 짓거리 같았다. 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 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 p. 98
난 가문비나무의 줄기를 꽉 끌어안으며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내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되돌아갔는지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한이 났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싹 가셨다. 웃기는 짓거리 같았다. 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전에 일생 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 p.98 12~20
나는 침묵을 지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주 늦게 집에 도착하여 텔레비전의 나쁜 효과에 대한 일장 훈계를 들어야만 했을 때에도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도 역시 하지 않았다. 누나에게도 하지 않았고, 형에게도 하지 않았으며, 경찰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코르넬리우스 미켈에게조차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 p.119-120
그제서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지르지도 못했다. <좀머 아저씨! 정지! 뒤로!>라고 소리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곳에서 황급히 뛰어가지도 않았으며, 아저씨를 구할 수 있는 배나 뗏목 혹은 구명용 공기매트를 찾으려고 해 보지도 않은 채 저 멀리에서 가라앉고 있는 작은 점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 p.115
그런데 우박이 떨어진 도로에 이슬비가 내리던 날, 좀머 아저씨 옆으로 차를 몰면서 그런 틀에 박힌 빈말을 아버지가 열린 창문을 통해 큰 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말에 아저씨가 우뚝 섰다. 내가 보기에 그는 바로 <죽겠어요>라는 말에서 빳빳하게 굳어지며 멈춰 서는 것같았다. 그것도 너무 갑작스럽게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그의 옆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급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했다. 아저씨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호두나무 지팡이를 왼손으로 바꿔쥐고는 우리쪽을 쳐다보고 아주 고집스러우면서도 절망적인 몸짓으로 지팡이를 여러번 땅에 내려치면서 크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
--- p.36-37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 말에 아저씨가 우뚝 섰다. 내가 보기에 그는 바로 '죽겠어요'라는 말에서 빳빳하게 굳어지며 멈춰 서는 것 같았다. 그것도 너무 갑작스럽게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그의 옆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급 브레이크를 밝아야만 했다. 아저씨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호두나무 지팡이를 왼손으로 바꿔 쥐고는 우리 쪽을 쳐다보고 아주 고집스러우면서도 절망적인 몸짓으로 지팡이를 여러 번 땅에 내려치면서 크고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 말뿐 더 이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말뿐이었다.
--- pp.36-37
그러다가 선생님이 재체기를 했다. 재채기를 하고 나서 내가 위에 묘사한 바 있는 둘째손가락으로 코밑을 훔치고는 연신 쇳소리를 내면서 두세 번 건반을 눌렀다. '이게 올림 바야, 이게 오림 바라구....!' 그리고는 선생님이 옷소매 끝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코를 풀었다. 올림 바 건반을 쳐다보던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 건반의 앞쪽 끄트머리에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재채기를 할 때 콧털에 붙었다가, 그곳을 훔쳐낼 때 둘째손가락으로 옮겨 붙었다가, 그곳을 훔쳐낼 때 둘째손가락으로 옮겨 붙었다가, 둘째손가락에서 올림 바 음 건반으로 옮겨 붙어 크기가 손톱만하고, 굵기는 거의 연필 굵기만 하며, 벌레처럼 휘어진 데다가 녹황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기조차 하는 끈적끈적한 코딱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 p.
3월에 다리는 눈이 부시도록 흰빛이었고, 울퉁불퉁한 혈관들은 사잇길이 많은 푸른색 강줄기의 모습처럼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불과 몇 주일만 지나면 다리는 꿀과 같은 색으로 변하였고, 7월에는 셔츠나 바지처럼 캐러멜 밤색으로 변하여 빛을 발하였다. 그리고 가을에는 피부가 햇빛과 바람과 일기 변화로 인해 짙은 밤색으로 변해서 혈관이나 힘줄이나 근육질이 전혀 구별되지 않았고, 다리는 마치 껍질이 벗겨진 호두나무의 울퉁불퉁한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11월이 되면 긴 바지와 긴 검은색 외투로 가려져서 사람들의 시선을 멀리한 채 이듬해 봄까지 원래의 색깔인 치즈빛 흰색으로 탈색되어 가곤 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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