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박사로서 이화여대 대학원장, 주 프랑스대사, 문교부 장관, 유엔총회 한국 대표, 경희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 교육개혁의 선구자로 민주주의와 아동 중심의 ‘새 교육’의 기틀을 다지는 등의 업적을 남기고 1987년 타계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문화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오천석 박사가 남긴 저서로 <오천석 교육사상문집> <민주교육을 지향하여> 등 다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노란손수건> 1, 2, 3권은 30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가려 뽑고 번역, 재구성한 감동의 이야기 모음이다.
그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지치고 피로한 빛이 싹 가신 그녀의 얼굴엔 한가득 환한 미소가 있었다. 울워드 백화점 로고가 찍한 포장지로 싼 선물꾸러미를, 마치 갓난아기라도 되는 듯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가 바람에 흩날리며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여윈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마음속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것은. 방금 전 상점에서는, 나는 한 사람의 초라한 고객을 보았을 뿐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마지막 손님을.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즐겁게 양말을 신어 보거나, 리본을 머리에 달고 거울을 들여다보거나, 새로 산 축음기에 판을 걸고 음악을 듣는 어린이들의 다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가 바로 그녀였다. 알 수 없이 이상스러운 감정이 내 몸 속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묘한 전율은 발끝에서 시작하여 머리끝까지 뻗쳤고, 몸 전체를 온통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옆자리의 파트너에게 이런 느낌을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틀림없이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비웃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무도회장으로 다는 내내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니, 새로운 감동으로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 와서, 그날 파티의 분위기라든가 내가 입었던 빨간 벨벳 야회복 등에 대해서는 별로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그러나 이즈음도 기분이 우울할 때면, 아이들을 위해 그 어렵게 산 선물 꾸러미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인의 미소 어린 얼굴이 분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주었을 때의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나는 일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비록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몇 분 정도를 기다려 준 것밖에는 없지만,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뜻을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그 초라한 회색 코트의 마지막 손님에게 지금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