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한 그릇 먹는 것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환연히 나타난다. 한국 사람들은 라면을 면보다는 국물 위주로 먹는다. 물론 꼬들꼬들한 면발을 즐기기도 하지만 국물을 먹지 않고 면만 건져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국물보다는 면을 먹으려고 라멘을 찾는다. 일본의 라멘집을 가거들랑 유심히 지켜보시라. 면만 후루룩 건져 먹고 국물에는 손도 안 대거나 한두 모금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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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리에서는 계절에 따라 재료들이 지닌 자연의 맛을 잘 살려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시된다. 이런 것을 '순(旬)'이라고 한다. 과일이든 생선이든 야채든 가장 신선하고 최고로 맛있는 제철이 있게 마련이다. 수퍼마켓이나 음식점 등에서는 식품마다 물이 올라 한창인 때를 놓치지 않고 '순(旬)'이라는 표시를 정확히 해준다. 그러면 주부들은 밥상 위에 이 순(旬) 반찬을 올리고, 밖에서 외식을 하는 사람들도 음식점에서 순(旬) 메뉴를 선택함으로써 그 계절의 진미를 즐기곤 한다.
자연을 변화를 즐기고 기념하려는 계절 축제가 발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표적인 순(旬) 계절 축제로 벚꽃을 즐기는 '하나미(花見)'을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꽃을, 벚꽃을 보면서 그 꽃나무 아래서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얘기하는, 어찌 보면 단조롭기 그지없는 이 축제를 일본인들은 참으로 좋아한다. (...)
나도 하나미의 진정한 매력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에 사는 어떤 외국인이 쓴 수필을 읽고는 모두 나와 같은 시간을 거쳐 외국 문화를 알게 되는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 지 4년째라는 그 외국인은 처음에 왜 그렇게 일본인들이 하나미에 열광하는지 이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해 한 해가 지나가면서 자신도 알게 모르게 하나미을 경험하다 보니, 이젠 자신에게도 벚꽃놀이가 일년 중 가장 즐거운 행사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인상적인 결론을 덧붙였다.
"우리의 인생이 시한부이듯이 일 년 중 한순간에 그렇게 화사하게 폈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벚꽃이기에 사람들이 그 허무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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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동네의 핫 뉴스는 '요시모토 비빔밥집'이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여러가지 나물도 충실하게 들어가고, 한국의 순창고추장을 직수입해 사용한다. 여기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이 있는데, 위아래가 뚫린 직육면체 나무 틀을 뜨거운 돌솥 가장자리에 싀워서 내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숟가락 두 개를 밥 양쪽에 꽂아놓는데, 사람들은 양손으로 숟가락을 돌려가며 밥을 비비고 난 다음 숟가락을 나 하나, 옆사람 하나씩 나누어 들고 함께 먹곤 한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비빔밥이 인기가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모자란다. 일본인들의 기본 문화를 완전히 뒤바꾼 대단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국물음식을 먹을 때도 건더기를 젓가락을 먹고 나서 국물은 마시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일본의 식당엘 가면 식탁에 아예 숟가락을 놓지 않는 곳이 많다. 씻었다고는 해도 누구의 입 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도 모르는 숟가락을 사용한다는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본인들이다. 그런데 요시모토 비빔밥집에서는 식사가 나오길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 그런 숟가락으로 즐거워하며 밥을 떠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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