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ㆍ극작가.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빈민의 둘째아드로 태어남. 고등학교 때 평생의 스승이며 이해자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문학이라는 창작의 세계에 눈뜸. 알제리 대학 시절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했고,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하여 극운동에 열중했으며, 알제 방송극단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졸업 후 진보적인 신문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면서 당국의 비위를 거슬려 알제리에서 추방됨. 파리로 전출하여 <파리 스와르>의 기자로 활동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북아프리카 해방전선의 기관지 <콩바>지에서 편지을 맡음. 갈리마르 출판사의 감수위원으로 일하며 45년 파리와 조국이 해방되기까지 독일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투신.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1960년 1월 4일 프랑스의 상스 근처인 빌레블레뱅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 2차대전을 전후해서 사르트르의 일련의 철학적 이론과 함께 세계 실존주의 작품의 선풍을 일으킨 그의 작품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은 허망의 사상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이방인』『페스트』『전락』『적지와 왕국』등이 있고, 에세이 『결혼』『시지프의 신화』『반항적 인간』『악튜엘』『여름』등과 희곡 『칼리귤라』『오해』『정의의 사람들』등이 있다.
나는 내가 할 일은 되돌아가는 것이고 그러면 일은 끝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태양에 떨고 있는 해변이 온통 내 뒤로 밀려드는 것이었다. 나는 샘 쪽으로 몇 발자국 걸었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아직 먼 거리에 있었다. 아마 그의 얼굴 위에 드러워진 그늘 때문인지 그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다렸다. 태양의 열기가 내 뺨에 와 닿았고 눈썹에 땀방울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처럼 특히 이마가 따가웠으며 혈맥은 모두 살갗 밑에서 일제히 뛰고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열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이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과 한 발자국 옮겨 놓았다고 해서 태양을 피하지는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한 발자국, 단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런데 이번에,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아랍인은 칼을 꺼내 그것을 햇빛에 비추어 보였다. 빛이 강철 위에서 뿜어 나왔다. 그것은 마치 내 이마에 와 닿는 번득이는 긴 칼날과도 같았다. 그 때 눈썹에 고여 있던 땀이 일시에 눈꺼풀로 흘러내려서 미지근하고 두꺼운 베일이 눈꺼풀을 덮어 씌웠다. 내 눈은 땀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다만 이마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와 그리고 줄곧 칼에서 발하는 번득이는 칼날을 내 면전에서 느꼈을 뿐이다. 이 타는 듯한 칼이 내 속눈썹을 찌르고 고통스러운 눈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이 흔들렸다.
바다가 확확 달은 짙은 입김을 휩쓸어 왔다. 하늘은 비오듯 불을 내리쏟기 위해 있는 대로 활짝 열려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모든 것이 긴장되었고 손이 권총 위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방아쇠가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