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수많은 괴담을 들으며 자랐다. 학교 가는 길에 우뚝 서 있던 색색의 끈이 달린 고목나무에는 천 년 묵은 고양이의 혼이 서려 있다고 했고 우리 학교의 터는 원래 공동묘지라고도 했다. 중학교 시절엔 학교 건물을 올리느라 옥상이 늘 공사장이었는데, 밤에 그곳에 올라가면 그림자가 하나 더 생겨난다는 괴담이 떠돌았던 기억도 난다. 『철수맨이 나타났다!』를 쓰는 내내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열광했던 학창 시절의 나와 내 친구들이 참 많이 그리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전설과 괴담이 존재하는 진짜 목적은 그것을 이야기하며 만들어 가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위해서가 아닐까? 1985년 서울 출생. 저서로는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전2권) 『여고생의 치맛단』 등이 있다.
그림 : 김주리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만화가가 되기를 꿈꿨다. 만화가 송진우 선생님 문하로 만화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며 살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이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바람이다. 2004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스위티』로 데뷔했으며, 『사이버 엔젤』 『드래곤 후』 등을 출간했다.
저자 : 김민서
1985년 서울 출생. 대학 졸업 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디며 2009년 첫 소설 『나의 블랙 미니드레스』를 출간했다. 왕성한 필력과 톡톡 튀는 문장을 갖추고, 현장조사와 인터뷰를 위해 발로 뛰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열정적인 작가이다.
철수맨은 그 시기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또는 그녀는 무능한 공권력의 상징인 헛발 짚는 경찰을 대신해 네 번째 희생자를 납치 중이던 연쇄살인범을 홀로 검거했다. 30대 초반의 남성인 범인을 밧줄로 묶어 경찰서 앞에 내던졌다고 한다. 그때 철수맨은 경찰서 담벼락에 노상방뇨를 하고 있던 순경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들켰는데, 놀랍게도 그는 귀여운 남자아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남자아이의 가면을. 딱히 그 영웅을 지칭할 고유명사가 없자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남성 이름인 ‘철수’에 히어로들만의 특권 명사인 ‘맨’을 갖다 붙였다. ‘철수맨’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 p.10
유채는 작년에 삼 일간 학교를 결석했다. 이유 없이 몸살이 나 침대보를 흠뻑 적시며 끙끙 앓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유일하게 말을 걸어 주었던 친구가 지은이었다. “아팠어? 많이 말랐다.” “응. 몸살 났었어.” “립글로스 빌려 줄까? 입술이 창백해 보여.” “고마워.”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이루어진 짧은 대화였다. 그 주에 유채는 지은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지은은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단짝 친구다. --- pp.82-83
지은이 먼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현우를 잡아 주었다. 현우는 여자애에게 의지하는 것이 창피했지만 지은의 손을 꼭 쥐고는 한동안 놓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손을 쥐고 놓는 행위에서 오가는 미묘한 떨림이 좋았다. 지은이 먼저 손을 구부려 빼내고서 여자애들에게 달려갔다. 현우는 이상한 지름길로 빠져나가려는 준석을 끌고 오면서 지은을 힐끗 훔쳐보았다. 오늘 지은은 흰색 티셔츠에 약간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이다. 뛸 때마다 찰랑찰랑 거리는 머리카락이 현우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무래도…….’ 현우는 오른쪽 손바닥을 심장 위에 올려놓았다. 같이 어울리고 집까지 데려다 주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지은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 웃음소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떠올리게 되는 시간들이 잦아졌다. --- pp.140-141
“그 발걸음 소리가 어디로 났냐고!” 희주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남학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더니 뒷문을 가리켰다. 희주는 망설임 없이 뒷문을 향해 뛰었다. ‘철수맨이야. 분명히 철수맨이……!’ 긴장한 탓에 다리에서 빠르게 힘이 빠져나가면서 숨이 차올랐다. 3학년 교실이 모여 있는 3층에 당도한 건 순식간이었다. 희주는 몸을 구부리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현기증에 관자놀이가 찡하다.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순간,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