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는 다시 책 속에 고개를 박았다.그만 나가달라는 표현이었다.몰리와 어떻게든 얘기를 해 보려고 할 때마다 느껴지는 기분,실망감과 동정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캠프에 갔던 몰리가 독감에 걸려 집에 오게 된 것은 피비가 시카고에 온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그 며칠동안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아니, 있다면 있긴 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피비는 할일없이 침대 시트의 실밥을 뜯었다.
--- p.108
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피비의 가슴을 한껏 부풀려 놓았다.
입구를 막고 선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동안, 댄과 함께 온 다른 선수들은 애인이며 부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오직 바비 탐만이 헛기침을 하며 장난을 쳤다.
'너무 뜨거워서 옆에 서 있지를 못하겠군요. 조심해야지 이러다 데겠는데요?'
'자네는 볼일 없나, 바비 탐?'
댄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가 드리죠.'
쿡쿡 웃으며 바비 탐이 사라졌다.
--- p.428
고급 주택들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낮은 언덕에 몸을 숨긴 레이 하디스티는 바람에 금발을 나부끼며 서 있는 피비의 모습을 포착했다. 레이는 인적이 뜸한 좁은 도로 한 귀퉁이에 밴을 세워놓고 쌍안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댄 케일보우 코치와 스타즈의 구단주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말이 그저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 동안 레이는 은밀히 댄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요긴하게 쓸 날이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댄은 레이가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스스로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스타즈 팀은 개막전 이후 단 한 번밖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나머지는 모두 형편없는 패배였다. 프로 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어이없는 실책을 연발하는, 수준 이하의 대학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스타즈의 패배가 거듭될수록 레이의 기쁨은 점점 더 커져갔다. 머지않아 댄 케일보우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되고 말겠지.
--- p.241
'경기장 밖에서의 댄 케일보우 코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피비양? 어땠어요?'
순간, 기자들이 일제히 눈을 치뜨고 그 기자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피비는 알고 있었다. 조만간 저들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리라는 것을. 물론 저 남자보다야 점잖은 단어를 선택하겠지만.
'댄 코치라면 성격도 좋고...'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피비는 론의 팔을 가만히 잡아 그의 말을 막았다.
'이건 제가 말씀드리죠. 잠자리에서의 댄코치에 대한 평가를 내려달라는 말씀이신가요? 질문의 요지가 그거였나요?'
의외로 노골적인 반문에 주간지 기자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으나, 곧 그의 얼굴에는 유들유들한 웃음기가 돌았다.
'뭐,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댄 코치는 아주 굉장한 남자였어요.'
피비는 잠시 말을 끊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기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털리 아처 코치나 바비 탐 댄튼, 짐 비더럿, 웹스터 그리어, 그리고 우리팀의 모든 공격수와 수비수도 다 댄 코치와 비슷한 수준이구요. 가만, 혹시 내가 빼먹은 사람은 없나요? 한 명이라도 빼놓으면 나중에 서운하다고 툴툴거릴 텐데.'
좌중에서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비는 흥분을 억누르며 밉살맞은 기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던졌다.
'내 기억이 맞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당신은 조금 실망스러운 편이었던것 같군요.'
사람들이 데굴데굴 구르고 야단이었다. 완승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피비가 기자들 생각만큼 쑥맥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증명해보인 셈이었다.
--- p.23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