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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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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리

: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 내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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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3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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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59MB ?
ISBN13 9788960904682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웃집의 젊은이가 날마다 밤을 새워 글을 읽으면 옆집 처녀는 공연히 마음이 설렌다. 도대체 어떤 젊은이일까? 그리하여 옛 문헌설화 속에는 옆집 청년의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처녀가 담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인지(鄭麟趾)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 사이로 그를 엿보고 흠모의 정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처녀가 담을 넘어 정인지의 방으로 뛰어들자, 정인지는 그녀를 타일렀다. 그러나 그녀는 소리를 질러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막무가내로 협박했다. 정인지는 밝은 날 모친에게 말씀드려 정식 혼인의 절차를 밟아 맞이하겠노라는 말로 처녀를 달래어 돌려보냈다. 이튿날 그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이사를 가버렸다. 남은 처녀는 상사병으로 죽었다.

조광조(趙光祖)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그의 낭랑한 독서성(讀書聲)에 반한 처녀가 담을 넘었다. 조광조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돌려보냈다. 그녀는 잘못을 뉘우쳤고, 훗날 다른 집안으로 시집갔다. 기묘사화 때 그 남편이 조광조를 해치려 하자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 일을 이야기하며 조광조를 해치지 못하게 했다. 심수경(沈守慶)과 김안국(金安國), 그리고 상진(尙震)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두 다 책 읽는 소리 때문에 생긴 아련한 옛날 이야기들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읽어보니 중세 유럽에서도 책은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었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가 묵독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눈으로만 읽는 묵독(默讀)은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요사스럽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경전을 읽을 때 신성함을 유지하려면 문장의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입을 크게 벌려 소리내어 성스러운 단어들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책장에 쓰인 죽어 있던 단어들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의미화된다고 여겼다.

동양에서도 옛 사람의 글을 소리 높여 되풀이해 읽다 보면 옛 사람의 성기(聲氣)가 내 목구멍과 입술에 젖어들고, 그리하여 글을 쓰면 옛 사람의 기운이 절로 스며들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글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소리를 통해 기운을 얻는다는 '인성구기(因聲求氣)'의 방법이 적극 권장되었다. 따라서 백독(百讀), 천독(千讀)의 목표를 세워 한 겨울을 산사에서 나곤 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하나씩 뒤집어서 읽은 회수를 표시하는 서산(書算)은 어느 집에나 있었다.
이제 책 읽는 소리는 뚝 그쳤다. 한글을 갓 깨친 어린아이들이나 떠듬떠듬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소리를 내어 상쾌한 리듬을 느끼며 읽을 만한 글이 더이상 없기 때문일까? 달 밝은 밤 옆집 총각의 낭랑한 독서성에 가슴 두근거리던 처녀들의 설렘이 새삼 그립다.
--- pp. 17 ~ 19
병오년 2월에 여아(女兒) 조실(趙室)이 제 아우 혼인 때 근행(覲行)하여 『임경업젼(林慶業傳)』을 등출(謄出) 차로 시작하였다가 필서(畢書) 못 하고 시댁으로 가기에, 제 아우 시켜 필서하며 제 종남매 제 숙질 글씨 간간이 쓰고 노부(老父)도 아픈 중 간신히 서너 장 등서(謄書)하였으니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필사본 『임경업젼(林慶業傳)』의 뒤에 적힌 필사기이다. 당시는 소설책이 중요한 혼수 품목 중 하나였다. 아우의 혼인을 맞이하여 처음 친정으로 어렵게 걸음한 딸이 집에 있던 소설책을 만지작거리다가 베껴 써서 시댁으로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내비친다. 하지만 소설책이 너무 길어 아직 반도 채 쓰지 못했는데 시댁으로 돌아갈 날짜가 닥치고 말았다.

글씨체를 보면, 처음에는 아버지가 딸이 반쯤 쓰다만 소설책을 직접 마저 베끼려 했던 모양이다. 몇 장을 쓰다가 여의치 않자 딸의 사촌동생을 동원하였다. 한 장 써보게 하니 글씨체가 마땅치 않았다. 붓을 빼앗아 다시 두 줄을 적다가 도저히 안 되었던지 제 동생을 시켜 마저 쓰게 했다. 필사가 다 끝나갈 무렵 조카아이가 자기의 필적도 남기겠다고 나섰던 모양이다. 마지막 장의 삐뚤빼뚤한 서툰 글씨 한 장은 그래서 끼어들었다. 그렇게 온 집안이 동원된 필사가 마침내 끝났다. 아버지는 책을 매고 나서 다시 붓을 들어 남은 여백에 편지를 대신하여 딸에게 필사의 경과를 적었다.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뒤늦게 친정에서 보내온 이 책을 받아든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때 소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책일 수가 없다. 그리운 아버지, 보고 싶은 동생과 친정 식구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필사기가 적힌 마지막 장에는 그녀의 눈물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부모의 이런 마음이 딸에게는 그 힘든 시집살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붓으로 베껴 쓴 옛 소설책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참 많다.
--- pp. 81 ~ 82
다산의 여러 제자가 한강 위 내 집으로 찾아왔다. 볼일을 마친 뒤에 물었다. "올해 동암(東菴)엔 띠를 얹었더냐?" "얹었습니다." "홍도화는 모두 말라죽진 않았구?" "아주 싱싱합니다." "우물가에 쌓아둔 돌은 무너지지 않았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연못 속에 잉어 두 마리는 많이 컸구?" "두 자나 됩니다." "동쪽 절로 가는 길 옆에 심어둔 동백꽃은 모두 무성하더냐?" "그렇습니다." "올 적에 이른 차를 따서 말려놓았느냐?" "아직 못 했습니다." "다신계(茶信契)의 전곡(錢穀)은 축나지 않았구?" "그렇습니다." "옛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대도 능히 부끄러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내가 다시 다산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또한 죽은 사람과 한가지일 것이야. 설령 혹 돌아간다고 해도 모름지기 부끄러운 빛이 없어야만 될 것이니라." 계미년 초여름 도광(道光) 3년(1823, 순조 23), 열상노인이 기숙(旗叔)과 금계(琴季) 두 군에게 써주노라.

1818년 8월 정약용은 장장 18년 간의 유배가 풀려 강진의 다산 초당(茶山草堂)을 떠나 고향 마재로 돌아간다. 그때 나이가 57세였다. 40대의 열정과 50대의 원숙을 모두 강진에 묻고, 이제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 강진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서울 가족과는 실로 감격의 상봉을 가졌겠지만, 강진의 제자들에게는 눈물의 이별을 뜻했다. 척박한 풍토에서 행운으로 큰 스승을 가까이서 모시며 모든 것을 의지하고 따르던 제자들은 스승의 해배(解配) 소식에 반가움의 환호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슬픔을 함께 맛보아야만 했다.
다산도 여러 제자들과의 작별이 못내 아쉬워 다신계 모임을 결성했다. 좥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좦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이 귀한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함께 지내며 즐거워하다가 헤어진 뒤에는 서로를 잊는다면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서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던 그 날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침내 스승은 행장을 꾸려서 다시는 오지 못할 강진 땅을 떠났겠지. 귤동을 나서 산모롱이를 돌아설 때 그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것이다. 제자 몇은 서울까지 스승을 모시고 와서 고향집으로 편히 모신 후에 그 먼 길을 걸어서 돌아갔다. 그 후로도 해마다 제자들은 집집이 차를 따서 이것을 합쳐 덖은 합심차(合心茶)를 멀리 계신 스승에게 올려보냈다.

위의 글은 1823년 4월, 그러니까 다산이 강진을 떠난 지 다섯 해가 되던 해에 스승을 뵈러 찾아온 윤종삼·윤종진 두 제자에게 써준 글이다.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제자들은 목부터 메어왔을 테고, 큰절을 올리고 두 손을 맞잡은 스승과 제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을 터이다. 그러고는 묻는 말이 꿈에도 잊을 수 없는, 하지만 다시는 갈 수 없는 다산초당의 근황이었다.

(...)

스승의 거듭되는 질문을 따라가다가 제자들은 스승이 다산초당과 거기서 함께 보냈던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알아차렸을 테고, 스승은 이 날의 문답을 예의 그 아름다운 필치로 써서 제자들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강진 시절의 제자 가운데 황상(黃裳)이 있다. 1836년 2월 그는 스승 내외의 회혼례(回婚禮)를 축하하기 위해 천릿길을 걸어서 스승을 찾았다. 18년 만에 뵙는 스승이었다. 이때 다산은 병이 몹시 위중했다. 병석에 누운 스승은 15세 때 처음 만나 어느덧 48세의 중년이 된 제자의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황상이 걸음을 돌려 강진으로 떠난 며칠 뒤 다산은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중도에 부음을 들은 황상은 되짚어 달려와 슬피 울며 스승과 영결했다.

다시 10년이 흘러 1845년 봄 황상은 스승의 기일에 맞추어 부르튼 발과 검게 탄 얼굴로 스승의 무덤 앞에 섰다. 손에는 스승이 지난번 마지막 헤어질 때 정표로 준 부채가 들려 있었다. 스승의 아들은 그 마음이 하도 고마워서 두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채 위에 차례로 시를 지어 그 정을 기렸다. 이렇게 해서 아들과 제자 사이에 정황계(丁黃契)가 맺어졌다.

선인의 거울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낯을 들 수가 없다. 다산 선생이 제자에게 준 편지 글씨를 펴볼 때마다, 나는 스승의 자리, 제자의 위치를 자꾸만 부끄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 pp. 122 ~ 126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마츠오 바쇼가 쓴 300년 전의 기행문이다. 그는 "조각 구름을 몰아가는 바람결에 이끌려 방랑하고픈 생각이 끊이지 않아" 그만 훌쩍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방랑길에 올랐다. 156일 동안 당시만 해도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던 일본 동북 지방을 제자 소라와 함께 여행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마츠오 바쇼는 이미 20세기 초두부터 서구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일본 에도(江戶) 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여행을 즐긴 방랑자였고, 당시까지만 해도 말장난에 가까웠던 하이카이[俳諧]를 차원 높은 예술의 세계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이번 여행은 애초부터 변방으로의 방랑, 무상한 속세를 떠나 내 몸을 버릴 각오로 떠나왔으니, 비록 여행을 하다가 길에서 죽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또한 천명이리라." 이러한 말에서 보듯 그는 철저한 무소유의 방랑 미학을 실천했던 인물로, 뒷날 그 길목에서 제자들의 간호를 받으며 삶을 마쳤다. 그의 글 속에는 은수자(隱修者)적 삶에 대한 동경과 탈속(脫俗)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다.

그의 글은 따뜻하다. 그의 글에는 읽는 이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우리는 300년 전 바쇼의 기행문에서 일본 문화의 다른 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약 2,400km에 달하는 긴 여정 속에는 에도를 출발하여 닛코 산과 나스노 들녘, 시모츠케와 오쿠를 거쳐 일본 제일의 절경을 자랑하는 마츠시마 섬과 잇꽃의 고장 오바나자와 등 여러 지방의 풍물과 그곳 옛 선인들의 자취가 담백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는 시인 바쇼의 내면 풍경이 그대로 비쳐진다. 문체의 묘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중간 중간에 자신이 방문한 곳에 대한 감회를 얹은 하이쿠가 수십 수 실려 있는데, 17자에 불과한 하이쿠 문학이 보여주는 간결한 함축과 긴장이 일본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낯설고도 새롭다.

참혹하도다
갑옷 밑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에는 전장(戰場)에서 산화한 무사 사네모리의 옛 자취를 보는 무상감이 실려 있고, 제자인 소라의

가다 가다가
쓰러져 죽더라도
싸리꽃 벌판.

에는 스승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제자의 아쉬운 마음이 담겨 있다. 바쇼는 이 시를 읽고, "먼저 떠나가는 이의 슬픔, 남겨진 이의 아쉬움은 마치 민댕기물떼새 한 마리가 지금까지 함께 날던 친구 새와 헤어져 구름 사이를 헤매는 것과 같았다"고 적고 있다. 또 사이교 법사가 지었다는

깊은 산 속의
바위틈에 떨어지는
물을 담았네.
한 알 한 알 떨어지는 상수리를 줍듯이.

와 같은 절제된 와카를 음미해보는 것도 이 기행문을 읽는 잔잔한 즐거움을 더해준다.

"30년 전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으로 끝나는 현대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결국 그는 30년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떠남에 대한 허망한 열망을 시를 통해 위로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삶의 속도에 치어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네의 삶은 늘 휴식과 위안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300년 전 바쇼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그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설 용기가 우리에겐 없다. 대신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읽으며, 그 허허로운 방랑의 여정을 떠올려 마른 가슴 속에 한 줄기 신선한 샘물을 길어 올려보고 싶은 것이다.
--- pp. 219 ~ 222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마츠오 바쇼가 쓴 300년 전의 기행문이다. 그는 "조각 구름을 몰아가는 바람결에 이끌려 방랑하고픈 생각이 끊이지 않아" 그만 훌쩍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방랑길에 올랐다. 156일 동안 당시만 해도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던 일본 동북 지방을 제자 소라와 함께 여행한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마츠오 바쇼는 이미 20세기 초두부터 서구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일본 에도(江戶) 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여행을 즐긴 방랑자였고, 당시까지만 해도 말장난에 가까웠던 하이카이[俳諧]를 차원 높은 예술의 세계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이번 여행은 애초부터 변방으로의 방랑, 무상한 속세를 떠나 내 몸을 버릴 각오로 떠나왔으니, 비록 여행을 하다가 길에서 죽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또한 천명이리라." 이러한 말에서 보듯 그는 철저한 무소유의 방랑 미학을 실천했던 인물로, 뒷날 그 길목에서 제자들의 간호를 받으며 삶을 마쳤다. 그의 글 속에는 은수자(隱修者)적 삶에 대한 동경과 탈속(脫俗)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다.

그의 글은 따뜻하다. 그의 글에는 읽는 이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우리는 300년 전 바쇼의 기행문에서 일본 문화의 다른 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약 2,400km에 달하는 긴 여정 속에는 에도를 출발하여 닛코 산과 나스노 들녘, 시모츠케와 오쿠를 거쳐 일본 제일의 절경을 자랑하는 마츠시마 섬과 잇꽃의 고장 오바나자와 등 여러 지방의 풍물과 그곳 옛 선인들의 자취가 담백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는 시인 바쇼의 내면 풍경이 그대로 비쳐진다. 문체의 묘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중간 중간에 자신이 방문한 곳에 대한 감회를 얹은 하이쿠가 수십 수 실려 있는데, 17자에 불과한 하이쿠 문학이 보여주는 간결한 함축과 긴장이 일본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낯설고도 새롭다.

참혹하도다
갑옷 밑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에는 전장(戰場)에서 산화한 무사 사네모리의 옛 자취를 보는 무상감이 실려 있고, 제자인 소라의

가다 가다가
쓰러져 죽더라도
싸리꽃 벌판.

에는 스승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제자의 아쉬운 마음이 담겨 있다. 바쇼는 이 시를 읽고, "먼저 떠나가는 이의 슬픔, 남겨진 이의 아쉬움은 마치 민댕기물떼새 한 마리가 지금까지 함께 날던 친구 새와 헤어져 구름 사이를 헤매는 것과 같았다"고 적고 있다. 또 사이교 법사가 지었다는

깊은 산 속의
바위틈에 떨어지는
물을 담았네.
한 알 한 알 떨어지는 상수리를 줍듯이.

와 같은 절제된 와카를 음미해보는 것도 이 기행문을 읽는 잔잔한 즐거움을 더해준다.

"30년 전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으로 끝나는 현대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결국 그는 30년간 실행에 옮기지 못한 떠남에 대한 허망한 열망을 시를 통해 위로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삶의 속도에 치어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네의 삶은 늘 휴식과 위안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300년 전 바쇼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그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설 용기가 우리에겐 없다. 대신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읽으며, 그 허허로운 방랑의 여정을 떠올려 마른 가슴 속에 한 줄기 신선한 샘물을 길어 올려보고 싶은 것이다.
--- pp. 219 ~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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