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속임수와 함정을 넘어서라” 중에서 ‘기원의 오류’
다음의 간단한 사례를 통해 진술의 기원을 근거로 진술의 질을 판단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기로 하자.
한 방 안에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비싼 사전을 팔려고 한다. 상대방이 방을 떠나려고 외투를 쳐다보는 것이 사전 판매인의 눈에 띈다. 사전 판매인은 커튼 사이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는 척하면서 갑자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가 오네요.” 그는 이로써 상대방을 계속 붙잡아두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술책은 통하지 않는다. 상대방은 외투를 집어들고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나가보니 정말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사전 판매인은 뜻하지 않게 타당한 진술을 했던 것이다.
이 가공의 이야기는 진술이 발생조건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진술의 발생 맥락과 무관하게 진술 자체를 검토할 수 있으며, 합리적인 토론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 앞에서 주눅 들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주제에 대해 난 오랫동안 연구했어요. 그러니 내 주장을 믿어도 좋습니다.
이윤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기업가로서는 물론 사회보장 분담액을 늘리려는 계획에 반대하고 싶으시겠죠.
이 말 자체는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업가의 주장에는 뭔가 고려해볼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p.84
“Chapter 6. 속임수와 함정을 넘어서라” 중에서 ‘인신공격의 오류’
A: 당신처럼 물리학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은 핵에너지 문제에 관해 함께 토론할 자격이 없어요.
B: 당신은 나의 물리학 지식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A: 한정숙 씨, 그건 아주 간단해요. 당신의 이력서만 한 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B: 하지만 핵에너지 문제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반드시 관련 전공을 이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모르시는군요. 이 주제에 접근하는 길은 아주 다양하답니다.
이러한 대응은 적절한 것인가? B는 제대로 응수하지 못했다. 그녀는 상대의 공격에 직접 대꾸함으로써 토론의 원주제로부터 멀어질 뿐만 아니라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역습도 그리 효과적인 수단이라고는 볼 수 없다.
A: 당신처럼 물리학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은 핵에너지 문제에 관해 함께 토론할 자격이 없습니다.
B: 꽤나 자신만만하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당신이 과거에 전문적인 문제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했는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말로 이 주제에 대해 정확한 논의를 하기에 부적합한 인물입니다.
A: 날아오는 화살을 다른 데로 돌려보겠다, 이겁니까?
“사실만 가지고 얘기합시다.” 인신공격에 대해 이런 말로 대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역시 적합한 반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개인에 대한 지적이 실제로 사실에 근거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A: 이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수년간의 경험이 필요해요. 당신은 아직 초보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B: 그건 우리의 주제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실만 가지고 얘기합시다.
A: 이보다 더 분명한 사실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실제로 우리 팀에 온 지 몇 주일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원칙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상대방에게 주장과 문제 자체에 주목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몇 가지 표현들이 있다. 물론 그것이 인신공격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필요하면 언제라도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마음속에 준비해놓는 것이 좋다.
날 공격하지 마시고 나의 주장을 공격해 보세요.
날 비판하지 마시고, 내가 방금 한 말을 비판하십시오.
상대의 인신공격을 약간 비꼬면서 대꾸할 수도 있다.
내가 이 문제에 관해 말할 자격조차 없는 문외한이라면, 전문가인 당신 같은 분이 내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겠네요. 어서 반박해보시죠.
(2) 때로는 공격을 무시하는 것으로 족한 경우도 있다. 특히 상대의 공격과 그 속에 암시된 기원의 오류가 다른 토론자들에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토론이 전체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을 때는 무반응이 가장 좋은 대책이 된다. 무시의 전략은 아울러 인신공격이 도무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오류임을 분명히 하는 효과도 있다. --- p.86
“Chapter 6. 속임수와 함정을 넘어서라” 중에서 ‘자연스러움의 오류’
자궁은 무엇 때문에 있나요? 우리 인간의 몸은 아기를 낳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자연이 그렇기를 원한 거죠.
이런 진술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전제가 충족되어 있다면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출산에 관한 토론에서 필요한 것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무엇을 성공적인 삶으로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다. 어떤 사실이나 태도와 관련해서 누군가가 ‘자연’,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와 같은 표현을 쓴다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자연의 권위에 기대는 것은 기만적인 수법이다. “피임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의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자연스럽다는 말 속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이런 식의 논증방식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밀에 따르면 사람들이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혹은 부자연스럽다고 규정할 때, 여기에는 이미 일정한 가치판단과 정보적 진술이 전제되어 있다. 우리는 수많은 자연적 사건과 과정들 가운데서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것만을 선별한다. 그것은 밀이 주장하듯이 무수한 전제를 함축하고 있는 가치편향적인 선택이다. 왜냐하면 자연에서는 사람들이 끔찍하다고 여기는 일들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질병, 화산폭발, 지진 등). “교수형이나 징역형에 해당될 범죄적 행위를 자연은 거의 매일같이 저지르고 있다(밀, 1984, p. 30).” --- p.94
“Chapter 6. 속임수와 함정을 넘어서라” 중에서 ‘거짓동의 전략’
토론 상대가 반론을 제기하면 우리는 “맞습니다, 다만”이라고 말함으로써 일단 전술적인 동의를 한 다음 이어서 자신의 재반론을 펼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상대의 주장에 부분적으로만 동의하기 때문에 일부 보완이나 수정의 필요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점도 고려해야겠죠.
하지만 “맞아요, 다만”이라는 표현을 상대를 교란하기 위한 수법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일단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곧바로 이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펼친다. 이런 수법을 통해서 토론은 분명한 방향을 상실할 위험에 빠진다. 이때는 속임수를 쓰는 상대방에게 그런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시 입장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당신은 내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면 당신의 반론에 대해 한번 얘기해볼까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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