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적인 백수로 몰아붙이는 친구에게 “뭐? 그럼 뱃속에 있는 나에게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하셨단 말이야?”라고 자조적인 변명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미국 수도에서 한인 중년으로 살아가는 두 친구의 이야기다. 한인이민사회를 본국 도둑놈들 소굴이라고 꼬집는 이들의 주장이 천부당 만부당 하다면서도, 최초 이민역사에서 그런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민족자결주의로 잘 알려진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의 노졸증이 대한국 임시정부 파리대표인 김규식 일행의 독립지지에 콧방귀도 뀌지 않은 까닭이라고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들어 설명하고, 해년마다 아름답게 피는 3천여 사꾸라가 워싱턴에 심겨진 까닭을 20세기초 미-일 태평양 패권의 산물로 풀었다. 어느날 워싱턴을 방문한 옛 친구, 남몰래 사장과 이름모를 여인이 끼어든 것은 1800년대 말 미국 사회주의 작가 에드워드 벨라미가 영국의 한 법원서기, 에버네저 하워드의 손에서 빚어진 ‘새마을 운동’이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인종차별의 최후 보루가 되었는데 이는 마치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선언서가 불륜선언서로 바뀐 것 만큼이나 거짓같은 사실이다. 영국의 한 음악동아리 회가였던 것이...미국 애국가가 된 까닭, 미국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이 외국군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일, 대통령궁이 화이트하우스로 불리게 된 것은 매파(War Hawks)란 말의 원조인 미국 국회의원들이 준비없이 시작한 전쟁때문이었다. 부인 몰래 이름모를 여인과 워싱턴 길에 오른 남몰래 사장,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좋은이웃정책’과 ‘뉴딜정책’을 듣고 한껏 흥이 난 이들, 연방국회의원이 자신의 부인과 친구인 연방검사가 바람난 사실을 알고 친구인 연방검사를 총으로 쏴버렸다. 가슴조이며 그 결과를 기다리며 듣는 이름모를 여인과 남몰래 사장에게 한달콤, 송아리가 뜻밖으로 끼어들고…. 작품 내내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두 친구는, 불리는 것으로는 왜곡과 억압을 느끼면서도 불리고 싶어 안달 난 현대인이 ‘실존과 정체성’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고 싶어도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없고, 받고 싶어도 상대는 그것을 줄 수 없어 늘 외로운 사람들. 환상이나 이미지 세상 안에서 나만의 그리움은 계속 쌓여가지만 정작, 상대를 만나면 또다시 외로울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것일까? 왜? 우리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영원한 이방인이 된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묻는 것이 때로 고통이지만 그것이 결국 감동을 준다고 한다. 제목이 ?+!(사랑과 느낌)으로 상징화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