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언어와 권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 마음 속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며 듣는 이는 그 생각이 합당한지, 그 생각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판단합니다. 타인이 생각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뛰어난 프리젠테이션과 함께라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은 강력한 설득 도구입니다. 이야기라는 틀에 아이디어를 담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생깁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설득하고 즐거움을 선사해 왔습니다.
2년 전, 저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역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세상으로 퍼져가는 프리젠테이션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영민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 및 사회운동가들을 위해 수천 건의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낯선 분야인 영화 시나리오, 문학, 신화, 철학을 연구하면서 흥미진진한 여정에 몸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연구 초기에 저는 독일의 극작가인 구스타프 프라이탁이 1863년에 그린 도표를 발견했습니다. 희랍 및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에 자주 등장하는 5막 구성의 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극의 구성이 어떤 모양을 가졌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연극에는 절정을 향해 발전하다가 해소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프라이탁의 피라미드를 보면서 프리젠테이션에도 이와 같은 모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형태가 나올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또한 프리젠테이션은 연극과는 다릅니다. 프리젠테이션에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프리젠테이션에는 여러 겹의 층이 존재하고 전달해야 하는 정보의 종류도 가지가지입니다. 연극에는 절정이 하나뿐인 반면 뛰어난 프리젠테이션에서는 절정부가 여럿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프리젠테이션 구성의 모형을 완성했던 어느 토요일 아침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도표가 정확하다면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의미가 큰 두 가지 프리젠테이션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2007년 아이폰 출시 프리젠테이션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둘 모두 제가 만든 모형에 들어맞았습니다. 글자 그대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꽁꽁 숨어있던 비밀을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에는 신성한 힘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될 초자연적인 힘이 그 속에 있는 듯도 합니다. 종교, 심리, 신화를 연구하는 이들은 스토리에 담긴 힘의 비밀을 풀고자 수십 년간 노력해 왔습니다.
정보 시대의 시작에 불과한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메시지에 짓눌려 있고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라는 끊임없는 유혹에 숨쉬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차라리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기술 발전 덕분에 의사소통 방법이 다양해지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은 사람이 직접 이야기를 전달하는 프리젠테이션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성이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미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변화’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보통 사람들에게 변화할 것을 설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모든 프리젠테이션에는 설득의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이견이 있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정보전달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에서는 기대하는 결과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청중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는 상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의 주제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관심을 갖도록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막혀있던 길을 뚫어주는 것입니다. 청중은 프리젠테이션에 소개된 정보를 근거로 행동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프리젠테이션은 설득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엔지니어, 교사, 과학자, 사업가, 관리자, 정치인, 학생 등 직업에 관계없이 프리젠테이션은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래는 그냥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들어낼 미래는 당신이 자신의 바람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책은 내용상으로 《슬라이드올로지》의 전편에 해당합니다. 《슬라이드올로지》를 저술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잘 나타내서 청중이 명확하게,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소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의미한 내용을 담은 멋진 슬라이드는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선 프리젠테이션을 체계적으로 해체합니다. 그리고 스토리라는 틀을 사용해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생각을 바꾸고 흥분시키는 프리젠테이션을 재구성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최고의 브랜드와 사상가들과 함께 20여 년간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 온 경험을 살려 여러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비주얼 스토리(Visual Story™)라는 방법론을 체계화했습니다.
이 책은 해설서이자 지침서이기도 하며 스토리에 근거한 의사전달 방식을 업무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남들이 도달하지 못한 프리젠테이션의 수준에 오를 것입니다. 스토리와 영화의 기법을 이용하여 당신은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며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는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핵심적인 방법을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미리 경고해 두지만 수준 높은 프리젠테이션은 많은 시간과 준비를 요구합니다. 시간에 쫓기면 품격 있는 발표를 하기 어렵습니다. 연습 없이 뛰어난 발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이나 당신이 속한 조직이 커다란 투자 대비 효과를 거두는 기술임에 틀림없습니다.
최근 디스팅션 사의 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설문에 응한 기업체 임원 중 86%는 발표 능력이 자신의 커리어와 수입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하다고 한 반면 매우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예행 연습에 두 시간 이상을 들인 경우는 25%에 불과했습니다.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큰 듯싶습니다.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에 투자한 결과는 다른 어떤 활동의 결과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면 사람들을 움직이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을 공들여 선택하고 전달하는 것은 의사전달의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발표자들의 업적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학교나 기업체, 정부부처 회의실부터 대규모 컨퍼런스에 이르기까지 청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기회가 늘어가고 있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한 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강단은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프로젝트의 성패가 결정되는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틀에 박힌 슬라이드, 닳고 닳은 미사여구로 채워진 뻣뻣한 연설문을 낭독하는 발표는 청중의 인내심과 관대함을 재확인할 뿐, 그들의 관점과 생각을 바꾸지는 못한 채 끝나고 만다. 반면, 청중을 세심하게 배려한 준비, 진심과 열정이 담긴 발표는 청중의 마음을 흔들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인을 제공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며, 발표를 앞둔 이에게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이 엄청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책은 슬라이드를 세련되게 만드는 기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점과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마음을 움직인 성공적인 소통의 사례로서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의 스토리텔링을 소개하고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깊은 깨우침을 준다.
조만간 있을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무조건 따라할 수 있는’ 해법을 찾으려는 이에게는 이 책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분석한 스파크라인을 이해하려면 각 사례를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며, 벤자민 잰더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해서 위대한 강연의 예로 언급된 사례는 온라인상에서 그들의 강연 동영상을 찾아보아야만 진가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에서도 기업체에서의 프리젠테이션을 주요 소재로 다룰 정도로 프리젠테이션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고화질 이미지나 프레지를 이용한 화려한 애니메이션 효과만으로는 차별화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낸시 두아르테의 책이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방향을 제시하리라 기대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