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담아주신 내 마음의 성경 노트
성경을 후련하게 깨치고 싶은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로망일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도 청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모로 애써보았으나 녹록하지 않았다. 성경을 골고루 빠짐없이 읽는 것부터 쉽지 않을뿐더러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 같았다. 그래도 성경 전체를 읽고 깨닫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며 씨름했다. 갈증을 풀 수 있을까 하여 늦은 나이에 신학공부도 해보았으나 기대만큼 시원하지는 않았다. 결국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때마침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게 되었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성경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성경을 자세히 읽어 나갔다. 자주 접하지 않는 부분에 더욱 집중했다. 뜻이 막히는 부분을 만나면 원어와 관련 연구를 찾아보고 묵상하며 궁금증을 풀었다. 한 해가 저물려 할 때쯤 66권을 정리한 요약본이 완성되었고, 내 마음속에는 제각기 저장되었던 성경의 컨텐츠가 하나의 큰 그림으로 모아지는 은혜가 있었다.
인생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운 것이 후련했지만 그보다 더 감사한 것은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아픔을 공감하게 된 것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고통당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럴 법하지 않다. 그러나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랑에 관한 한 하나님은 그리 강한 분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고통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고 믿는다.
받은 은혜를 나눠야 한다는 빚진 마음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들과 성경을 함께 읽었다. 그때마다 나의 학습 노트를 복사해서 교재로 사용하곤 했다. 가끔 출판을 권유하는 말을 덕담으로 흘렸는데, 가까운 목사님의 거듭된 권면에 결국 규장의 문을 두드려 책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굳이 책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널리 공감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받은 감동 때문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원고를 썼지만 막상 책을 내려니 불현듯 외람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기에 나의 가슴은 턱없이 좁고 얕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리지 못한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채워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조대희
--- 서문 중에서
우리는 아담의 기질을 내려받아 날 때부터 ‘나’와 ‘남’을 차별화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러한 모습은 타락이며 저주이다. 인류의 모든 갈등과 죄악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은 배타적 자의식이 어떻게 끔찍한 죄를 낳는지를 잘 보여준다. 성경은 이러한 저주로부터 인간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무진 노력을 쏟으시는 하나님의 고통스런 역사를 기록한다. 성경이 두꺼운 것은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 p.34, '창세기’ 중에서
설교의 결론으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 선택지 중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고 생명을 취할 것인가, 불순종하여 저주 받고 사망에 이를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질문으로 모세는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 p.76, ‘신명기’ 중에서
사사들도 온전하지 않았다. 사사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한 가지 서원을 한다. 승리를 주시면 자기 집에서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인신제사는 하나님께서 극히 혐오하는 범죄이다. 일찍이 이런 일을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말씀도 주신 바 있다(레 20:1-5). 전쟁에 승리했는데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인물은 하필 입다의 외동딸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 p.86, ‘사사기’ 중에서
전도자는 사람이 살면서 하는 모든 수고 또한 헛되다고 설명한다. 수고에 따른 결과를 자기가 누리지 못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기도 어렵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잘 알 수 없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들도 많다. 그렇기에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한다. 삶은 이렇게 허망한 것이지만, 전도자는 한 가지를 긍정한다. 사람이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것으로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 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 p.162, '전도서’ 중에서
에스겔의 메시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는 부르심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래 책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언급한다(겔 1:4-28, 3:12,23, 8:4, 9:3, 10:4,18,19, 11:22,23, 39:11,21, 43:2-5, 44:4). 하나님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기 위하여” 일하신다고 60번 넘게 말씀하신다(겔 6:7,10,13,14 외 다수). 또한 “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내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15번이나 말씀하신다(겔 20:9,14,22,39,44, 36:20-23, 39:7,25, 43:7,8).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데도 그들을 위해 일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답답한 마음이 드러난다.
--- p.191, '에스겔’ 중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것은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었다. 그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지속적인 지도를 받고서도 회개하지 않았지만, 니느웨는 요나의 성의 없는 선포를 한 번 듣고 거국적으로 회개했다. 이방 나라의 즉각적인 회개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불순종이 대조를 이룬다.
--- p.220, '요나’ 중에서
로마는 정치적으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문화적 영역만은 헬레니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로마인들은 문화, 사상, 교육 등 생활의 전반적인 면에서 헬라의 양식을 거의 답습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7-12세 동안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시와 격언의 암기가 주요한 교육의 내용이었고 출세의 수단으로 웅변을 중시했다. 한편 각 가정에서는 ‘파이다고고스’라는 노예 신분의 가정교사를 두어 자녀의 생활을 시중들게 했다(갈 3:24,25에서 ‘초등교사’ 또는 ‘몽학선생’으로 번역되었다). … 한편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가정이 교육의 중요한 장소였으며, 회당에 딸린 학교에서는 토라(율법)를 교재로 한 암기식 교육을 진행했다. 상급학교에서는 유대 교훈의 대전집인 학카다와 할라카를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유대인의 결속과 율법 준수 등에 크게 기여했다.
--- p.267, '신구약 중간사’ 중에서
누가복음에도 예수의 족보가 나타나는데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확연히 다르게 설명한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하향식으로 설명하는 데 반해 누가복음은 요셉부터 다윗과 아브라함을 거쳐 아담까지 상향식으로 설명한다. 유대인인 마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부터 족보를 시작했지만, 이방인인 누가는 인류 전체의 조상인 아담까지 기록한다.
--- p.312, '누가복음’ 중에서
고린도교회의 문제점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할 교회에 이방의 세속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이 그대로 스며들어 생긴 것들이다. 당시 교인들은 교회 지도자들을 경쟁 관계로 생각해서 그들의 리더십을 비교하여 더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속하려 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사람이 자랑할 것이 없으며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꾼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 p.361, '고린도전서’ 중에서
요한이 본 미래에 대한 환상이 시사하는 바는, 역사의 종국에는 악의 세력이 철저히 심판받을 것이며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새 예루살렘)을 맞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들은 당시 고통과 두려움에 떨던 교회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계시록은 재앙을 이야기하지만 이야기의 결국은 그리스도의 승리와 교회의 구원과 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다. 따라서 계시록은 위로와 희망의 책이다.
--- p.453, '요한계시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