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서구의 전통적 역사에서 나오는 그림과 주제들을 항상 의식하였다. 고대인들의 신화, 조형 예술 그리고 문학은 괴테에게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창작을 위한 명백한 예들이자 중요한 보조 수단들이 되었음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속의 단편들에서 찾을 수 있다.
괴테는 「성 요셉」, 「50세의 사나이」, 라고 마조레 에피소드 속에 성경과 고대에서 내려오는 모티브들을 형상화시킴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림들이 자신의 상상력에 제어를 가하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호 역할을 했음을 에커만에게도 밝혔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야기한 바 있듯, 로마 여행 중에도 예술품 중심으로 관찰하였다. 또한 그는 전통적 상징들에 새로이 생명을 부여하고 수용하였으며 창조하였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전래된 그림들의 모티브를 유지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이 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구현하는 형상들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괴테는 성경, 신화의 의미, 그리고 그의 예술 이해를 바탕으로 조형 예술과 사랑의 모티브를 결합시켜 「성 요셉」과 「50세의 사나이」, 라고 마조레 에피소드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괴테의 작품에서는 역사적·미학적 이해, 모범적 삶 그리고 순수한 인간적 감성을 찾을 수 있다. 괴테는 이러한 자신의 창작 과정을 논문 「고대와 현대」에서 「조형 예술의 상징을 가지고 인간의 행위와 실행이 영원히 지속되는 삶을 암시하였다면서 자신의 문학 작품과 조형 예술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 p.81
괴테의 작품 속에 사랑이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만큼, 신화 속 사랑의 신 아모르, 또는 큐피드에 대한 괴테의 관심도 지대하다. 특히 괴테는 고대 로마 시인들의 큐피드에 대한 해석을 많이 참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괴테는 1788년 10월 25일 자 편지에서 크네벨에게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프로페르티우스의 비가를 보내 준 데 대하여 감사의 표현을 전한다. 이 편지를 살펴보면 괴테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읽은 이 프로페르티우스의 비가에서도 어린아이 같은 큐피드의 외모와 그의 「무모한 태도」, 「변덕스러운 성향」으로 해석되는 큐피드의 날개가 언급되고 있다. 바이마르에 위치한 괴테의 집에 있는 주노의 방 양쪽 두 개의 방문 위에 동신(童神)의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 그림들은 모순적 사랑의 테마를 보여 준다. --- p.92
고대·르네상스 예술은 괴테 문학 속으로 어떻게 녹아들었는가
괴테는 아버지의 이탈리아 예술품 수집과 이탈리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서도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가 괴테에게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우도록 했다는 사실, 그의 집에는 수많은 이탈리아 예술 작품들과 이탈리아 풍경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는 것과 아버지가 쓴 「이탈리아 기행」에 대하여 괴테는 「시와 진실」 1부 1장 속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집 안에서 가장 내 시선을 끈 것은 부친이 대합실에 장식해 놓았던 일련의 로마 풍경들이었다. 그것들은 피라네제의 선배인 두서너 명의 노련한 화가의 동판화들인데, 구성 양식에 있어서나 원근법에 있어서 이해가 깊고 그들의 필치가 매우 명확하고 찬양할 만했다. 여기서 나는 매일같이 포폴로 광장, 콜리세오, 베드로 광장, 베드로 사원의 내부와 외부, 엔젤스부르크와 기타 많은 것들을 보았다. 이 모습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평소에는 말이 적으신 부친도 때때로 친절하게 그림의 묘사를 설명해 주었다. 이탈리아와 그 나라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은 대단했다. 아버지는 때때로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조그마한 대리석과 박물관의 표본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탈리아어로 쓴 여행기를 장별로 직접 정서하고 편집하는 데 보내셨다. 작업은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작성하였다. --- p.27
파에스툼에 있는 고대 그리스 신전을 보고 괴테가 느꼈던 압도적인 인상과 낯설음은 「파우스트」 II부 1막 「기사의 홀」에서 헬레나와 파리스의 시대를 재현하는 공연을 보면서 내뱉는 천문학자와 건축가의 말을 통해서 반복된다. 그리스의 건축을 보고 느끼는 천문학자의 묘사는 그리스 신전의 많은 기둥을 보고 느꼈던 괴테의 경이로움과 일치한다. 그리고 자신이 현재 몸담고 있는 고딕 건축 양식의 뾰족한 천장에 익숙해져 있는 건축가의 입을 통해 그리스 신전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다. 건축가의 비판은 괴테가 파에스툼 신전을 보고 자신이 처음 느꼈던 낯설음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건축에 대한 친근감과 일치한다. --- p.41
괴테의 작품과 그의 편지 등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가 조형 예술에 많은 지식과 관심므 가지고 있었고 고대로부터 전래된 조형 예술의 모티브에서 자신의 문학을 위한 창조의 동력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에서도 그가 그림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았음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1827년 1월 18일 에커만과 대화하면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화가의 입장에서」 전개시켜 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에커만에게 페터 파울 루벤스의 작품 「여름 저녁」과 「화가(루벤스)의 시적 정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형 예술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기행」에서 「내가 스케치하고 예술을 공부하는 것은 시적 자산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조형 예술 작품들이 자신의 환상과 창조 정신을 자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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