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 마을에서 태어나 1986년 동촌문학지에 소설 「도시의 불빛」을 발표하면서 글을 써오고 있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물살』 『발기에 관한 마지막 질문』 『무인시대에 생긴 일』 『개밥』 『은밀한 대화』, 장편소설 『침묵의 노래』, 시집 『내 마음의 거처』 『파란 가을하늘 아래서는 그리움도 꿈이다』 『뜨거운 바다』 등이 있으며, 계간문학지 〈한류문예〉의 주간을 역임했다.
승리도 패배조차도 역사의 시간 속으로 스러지는 것이니 자만하거나 비통해하지 마라. 다만, 인간은 존재의 순간에 삶을 간직한다. 세상과 불화했던 이들이여, 울지 마라. 인간의 삶은 늘 그러했노라고. 눈에 보이지 않았던 시간은 시속 얼마나 되었을까. 아물아물한 지평선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과 하늘은 맞닿아서 겨울의 지평선은 그저 막막하다. 대지의 끝을 향하여 가다보면 바다로 연해 있으리라. ---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위하여」중에서
그것이 나의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때로는 자각증상이 올 때도 있다. 내가 알에서 애벌레였을 적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비가 된 지금, 그냥 나래 짓으로 유채꽃과 아카시아 향기와 밤나무를 따라 나서면 운명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 잠을 깼다. 달려있어야 할 날개가 없었다. 자유분방한 내 거드름과 몸짓은 어떤 영혼의 육신을 대신하여 훨훨 날아다녔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내 이빨도 발톱도 없는 몸은 커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풀과 잡초 아래로 추락하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