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섭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마루’ 또는 ‘마루쌤’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 첫 제자들은 여전히 나를 보면 오마루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끔은 저희들도 모르게 ‘형’ 하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래도좋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나란 어떤 존재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루’라고 불리고 싶은 건 마루처럼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어디를 향해서도 열려 있고 누구든 쉬어갈 수 있는 곳. 크게 격식차리지 않고 드러누워 하늘도 보고 산도 보고 달도 보고 바람도 맞을 수 있는 곳.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그렇게 살고 싶다. 이런 나를 보고 많은 분들이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선생이 그래서 되겠냐며, 너에게 뭘 배우겠냐며 타박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말이 아이들에게 지식이나 전해주는선생이 아닌 인생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란 뜻이라는 걸. 그래서 그들 곁으로 한껏 다가서고 싶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함께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그런 선생이고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존재로 남기 위해 오늘도 나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위성도시란 이름으로 불리웠던 성남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국문과에 입학했다. 야학과 학원강사 생활을 했으나 선생님으로 살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여전히 선생님이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분당 낙생고등학교에서 11년째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 남들보다 빨리 간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야. 조금 늦게 출발한 사람 역시 같은 길을 함께 가고 있는 거야. 그 길에서 우리는 무수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테니까. 대학, 취직, 결혼, 아이 낳는 것까지 남들보다 모든 것을 빨리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급함은 우리의 생활을 너무 힘들고 어렵게 만들 거야.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금의 생활을 즐겼으면 해. 당장 눈앞에 놓인 시험과 수험생이라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열아홉,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는 나이』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든 성공을 해야 하며, 성공을 위해서라면 조금은 나쁜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고,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도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어른들의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해져 꿈을 꾸는 아이들조차 최선을 다하기보다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한다, 지금 참는 자가 나중에 성공한다, 그때 인생을 즐겨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보상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왜 모르는 것일까? ---『네가 뭘하든 학교공부는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어』
“학교에서 제 역할은 뭘까요? 악역은 제가 맡으면 됩니다. 그러니 집에서 어머님들은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는 말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은 제가, 수업 시간 선생님이 때론 학원에서 하면 됩니다. 아이들은 공부에 대해서라면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집에서는 그 말 대신 따뜻한 말만 해주시는 게 아이들을 위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싶게 만들겠습니다』
오랫동안 고3 담임을 하다 1학년 담임을 맡은 적이 있었다. 불과 2년의 차이지만 학교에서 고3과 고1은 너무 다르다. 3학년은 늙은이처럼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표정으로 학교를 다니지만 1학년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와 다름없다. 그 모숩을 보고 너무 귀여워 한 달 동안 아이들의 표현대로 인자한 아버지 미소를 짓고 다녔다. 그 인자한 미소가 호통과 야단으로 바뀌는 데는 한 달밖에 안 걸렸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가져서 행복하다고 생각될 때』
요즘 너희들은 휴대전화 증후군이라고 할 정도로 휴대전화에 푹 빠져 살아. 집에서도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심지와 친구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조차 휴대전화를 손에서 떨어뜨리지 못하지. …… 그런데 휴대전화로 인해 우리가 놓치는 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더 이상 창밖을 내다보지 않게 되었어. 약속시간에 늦더라도 미안해하지 않아. 전화하면 되거든.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용서하기 힘들어』
내가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몸이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워져. 그리고 그 일이 하기 싫어질 때도 있거든. 그런데 그 생활이 내 몸으로 의식하지 않은 채 내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냥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은 습관을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해. 그냥 가만히 있다고 해서 생활인이 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그 안에 나를 맞춰나가야만 해. ---『약속시간을 지키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
산이나 바다를 좋아할 수도 있고, 맘이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시며 그저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도 연애의 감정 아닐까? 연애는 이성하고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연애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난 너희와도 연애하고 싶단다. 가끔 주변에서 늦은 나이에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이지 않니?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이 있지. 선생님이 생각할 땐 나이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인 것 같아.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때 사람은 늙는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학교 운동장 가운데 서서 불이 꺼진 학교를 바라보면 칠흑같은 어둠뿐이다. 잠시 전까지 불빛 가득하던 교실에서 가슴속에 별 하나씩을 품고 빛을 잃어버릴까 옹송그리며 앉아 책을 보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총성 없는 전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