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설화와 분단에 관한 순수 희곡 작품에 주력해 왔으며 『바리공주』 『종착역』 『눈꽃』 등을 통해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극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남태강곡』 『우리 코를 뚫어다오』 『나부상화』등의 작품으로 불교의 문학적 착화에 진력해 왔다. 산문으로 『산문, 그 아름다운 이야기』 『너를 닮은 마을에서』 등이 있고, 소설로는 『이곳에 살기 위하여』 『패랭이꽃』 등이 있으며, 동화로는 『눈보라 어머니』 『흰빛 검은빛』 『덕수궁 편지』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부술 태평가를 부르며 세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야말로 물이 되었다. 구름이 되었다. 33살에 그는 비로소 좁은 조선의 운수납자(雲水衲子)에서 은하(銀河)의 상락객(常樂客)이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전국을 떠돌며 미망 속을 헤매는 대중들을 일갈하고, 오늘날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숱한 일화를 남긴다.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배꼽이 터질 정도로 우리를 웃게 만드는 그 일화들이 실은 바로 그의 실체다.---p.19~20
경허는 어째서 아이들에게 매 맞는 것을 자초한 것일까? 그리고 분명히 맞았는데 어째서 맞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해 계속해서 매질을 유도한 것일까? 경허는 아이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싶었던 것이다. 못난 이 씨 왕조, 그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백성들. 아이들 앞에서 속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질곡 속에서 그들을 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 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하기에 저들로부터 몰매 맞는 것을 자초한 것이다. 경허는 아이들에게 돈과 과자를 내주고 고개를 넘어가며 한 곡조 노래를 읊었다.---p.40
경허의 제자들 또한 경허와 필적한다. 그들은 수월(水月)과 혜월(慧月), 그리고 만공(滿空)과 한암(漢岩)이다. 이들 모두 한국 불교사의 거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향기(香氣)가 있다. 선기(禪氣)가 있다. 수월과 혜월은 남긴 문장은 없다고 하나 그 끝없는 선화(禪話)와 가화(佳話)로 이 나라 제일의 구도자로 후세의 첨앙(瞻仰) 대상이 되어 왔다. 만공과 한암 또한 문장과 덕행을 아울러 남긴 이 나라 제일의 수행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