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자랑을 늘어놓는 그녀를 좋아할 동창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거의 늘 밥값을 지불하는 그녀 앞에서 대놓고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없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가 여고 동창 모임의 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도 자기 가문의 영광이라고 믿고 행복해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였다. 그러나 동창 모임에 가서 전과 동일한 자랑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자기의 처지를 생각할 때에 그녀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장남과 장녀의 문제를 감추어 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내일 있을 여고 동창 모임에 가서 늘어놓을 자랑거리를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녀의 얼굴엔 점점 더 짙은 어두움이 깔리고 있었다. 그것은 천둥을 잉태한 소나기구름이었다. 비밀이 폭로되면 잉태된 천둥이 벼락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믿으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 p.18
“왜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들까? 다 이루어져야 하겠는데. 유리가 사귀는 하버드 박사가 과연 유리와 결혼을 할 것인가? 내가 지금 강 교수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보안 유지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큰 아들에게서 깜둥이 년을 떼어버리고 그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와 결혼을 시키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예일대학 박사 며느리라는 명예는 어디다 두고? 그리고 작은 아들 놈 문제는…….” 그녀의 불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은 아들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그녀는 그토록 많은 돈을 들여 조기 유학을 보낸 자신의 행위가 무척이나 후회스러웠다. 국내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마약 중독자나 도박 중독자는 되지 않았을 게 아닌가. 마약이나 도박에 빠진 것도 걱정인데 그놈은 독신주의자가 아닌가. 차라리 그놈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그놈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 pp.146-147
다시 눈을 떴을 때에 태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또 하나의 태양이 거기 있었다. 그녀가 평생토록 만든 태양이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상한 태양이었다. 까만 빛을 발산하는 아주 흉측한 태양이었다. 흑광黑光을 발산하는 괴기한 태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