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전해 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여행이 왜 멋지지? 짐을 꾸리고, 지도를 찾고, 돈이 떨어지고, 황홀한 풍경에 넋을 잃고, 길을 잃고, 추운 밤을 지새우고, 천사와 악당을 만나고, 가끔은 울고도 싶어지는데 왜 사람들은 길을 떠날까? 다름 아닌 그 모든 걸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지. 고생을 각오하고, 위험을 알면서도 떠나는 거야. 떠나고 느꼈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니까.
우리의 삶은 그렇게 스스로 선택한 여행이라고, 그 아이들에게 일러줘. 마음 가득 느낌과 감동을 담으러 떠나온 길이라고. 그러니까 그 길 끝까지 한번 가보라고. 좌절이 오면 좌절을, 슬픔이 오면 슬픔을, 기쁨이 오면 기쁨을 기꺼이 느끼면서 그 길을 즐겨보라고. 타고 가는 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행을 그만두어버린다면 너무 아깝지 않아? 진짜 멋진 풍경은 버스에서 내려서 시작되니 제발 그 ‘사춘기’ 버스에서 뛰어 내리지 말라고 일러줘.
그리고 우리의 여행은 반드시 돌아갈 날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라고. 돌아와서는, 모아 온 추억들을 차곡차곡 이야기하며 웃기 위해서 그렇게 슬프고도 행복했던 거라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이 늙은이의 말을 네가 잊지 말고 전해줘야 해.”
나는 그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약속했다. 나의 목소리가 닿는 곳까지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겠노라고, 그리고 나 또한 흔들림 없이 이 정답고도 사치스러운 여행을 계속 하겠노라고.
--- "엘머 할아버지의 당부" 중에서
나는 준비해간 칫솔을 한 명 한 명 목에 걸어주었다. 아이들이 칫솔을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에게 뺏기게 하지 않기 위해서(인도에서 플라스틱 제품은 꽤 비싸다) 칫솔 손잡이 부분에 난 구멍에 리본을 꿰어 목걸이처럼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과 칫솔을 달랑거리며 수돗가로 가서 함께 이를 닦았다. 오른쪽, 왼쪽, 위로, 아래로…… 수돗가의 아이들과 하얀 이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 다음 날, 다시 함께 이를 닦기 위해 그 학교를 찾아갔을 때 한 아이의 가슴에 매달려 있어야 할 칫솔이 보이지 않았다. “나심! 칫솔 어디 있어?”
소년은 머뭇머뭇 대답했다. “동생에게 주었어요.” “ 왜? 너는 이 닦기 싫었어?” 동생이 없는 나는 철없이 물었다. “아니요!” 아니는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이를 닦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닦는 것도 재밌고, 그래서 동생에게 주었어요.” 아아… 눈물이 핑 돌도록 부끄러웠다. 아이는 주는 법을 알고 있었던 거다. 내가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주는 법을. 나심에겐 동생이 네 명이나 있다고 했다. 갖고 간 칫솔은 이미 다 나눠주고 없었으므로 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어린이용 칫솔 다섯 개를 더 샀다. “한국에서 갖고 온 것만큼 좋은 칫솔은 아니지만 내 용돈을 털어 산 거니까 받아줘. 그리고 동생들에겐 네가 이 닦는 법을 잘 가르쳐줘야 해.” 나심은 칫솔을 받아 들고 목이 메는지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내가 돌아가려 할 때 나심이 내 가방 안에 무언가를 잽싸게 집어넣고 도망친다. 꺼내보니 시든 코코넛 잎에 무언가가 싸여 있다. 작은 바나나 한 개와 사탕 두 개. 학교에서 받은 간식이다. 나심, 너는 또 주었구나,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 "주는 아이 나심의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