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가 얘기한 ‘거실론’을 강조하고 싶어요. 대화가 활발하려면 어릴 때의 거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론이죠. 말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언어구사력이 좋아요. 이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 활동. 교회 가서 기도하려면 길게 말하는 능력이 필요하거든요. 자연히 ‘말발’이 세집니다. 두 번째는 거실 대화 경험이에요. 부모와 얼마나 대화를 많이 했느냐는 거죠. 부모와의 심리적 간격이 좁으면 거실은 소통의 장이 돼요. --- p.26
공감은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0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어요. 10대는 사회적으로 공감의 언어를 배우는 시기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백인 동네에서만 자란 10대 아이들에게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흑인이 고통을 당하는 내용의 화면을 보여준 다음 저 사람이 지금 얼마 정도 아플지 순서를 매기라고 해요. 그러면 자신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가장 아프게 느낄 거라고 얘기해요. --- p.57
제가 생각하는 조직 소통의 핵심 역시 비전 공유였거든요. 또 하나는 상호작용성입니다. 관계죠. 서로가 서로와 관계를 맺고, 내가 너를 필요로 하고 너가 나를 필요로 하는, 끈끈한 동질감이 유지되도록요. 조직 소통의 삼각형 중 하나가 비어 있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다른 걸로 채워도 될 것 같아요. 단순히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공간일 수도 있겠죠. 여유를 뜻하는 심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요. 물론 물리적 공간도 중요합니다. --- p.85
인간의 뇌는 공간에 대한 애착감이 대단해요. 이론적으로는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 리더도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 소통에 좋을 것 같지만, 그러면 실제로는 심리적인 압박이 점점 생길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동물하고 똑같아요. 동물들이 영역 표시하느라 침 뱉어놓고 오줌 싸놓는 것 같이, 우리도 우리 공간이 있는 걸 너무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압박을 받는 장소가 엘리베이터잖아요. 내가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영역도 침범당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이 천장 쳐다보고, 벽 쳐다보고 있는 게 그래서예요. --- p.144
감정을 여러 바구니에 담아서 다양한 관계들을 만들어두면, 그중 하나가 문제가 생겨도 감정 전체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외로움이나 공허함으로 다가오지는 않아요. 성범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어린 시절, 결정적 시기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상담심리학에서는 ‘어린 나’를 찾아야 된다고 해요. 내가 어렸을 때 또는 결정적 시기에 외롭고 힘들었던 기억을 찾아내면 그때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고,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 p.173
가정도 조직이라고 보면, 공동의 목표가 있는 가정이 뭔가를 만들어내죠. 목표가 없는 가정이 많거든요. 또 하나, 상호작용. 부부간의 대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발전소죠. 이게 돌아가지 않으면 비전과 공감도 안 되는 거죠. 어떻게 대화할지 모른다고 포기해버리고,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없고 공감도 만들지 못하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 p.201
소통을 잘하려면 교집합을 잘 찾아야 한다고 말했었죠. 이 교집합이라는 것이 공통분모였지만, 혈연, 지연, 학연은 아니었거든요. 우리 사회는 소통을 위한 교집합을 만들지 못하고, 자연상태의 혈연, 지연, 학연을 그 교집합의 신호로 인식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죠. 사회와 정치의 리더십이 공동체가 공유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생존과 직결된 불안 해소의 차원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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