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리안네 베버Marianne Weber의『Max Weber-Ein Lebensbild』(Heidelberg, 1926)를 초역抄譯한 것이다. 저자 마리안네 베버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막스 베버의 부인이다. 마리안네와 막스는 이종남매간이었으나 그들은 1891년에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의 베버 가에서 처음 상봉했고, 그로부터 약 1년 반 뒤인 1893년 가을에 결혼했다. 이래 막스 베버가 서거한 1920년까지 27년간 그들은 잠시도 서로 떨어져본 일이 없는 생애의 동반자였다.
베버는 타고난 체구골격은 장대했으나 체질은 병약했고 특히 신경성 질환에 오래 시달려 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그 때문에 베버는 습기 차고 음산한 독일의 겨울을 피하여 이탈리아 등 남부지방을 자주 여행했는데, 이 베버의 요양 차 여행에는 항상 마리안네가 동반했다. 1904년에 베버는 미국을 여행한 일이 있었다. 이때에도 마리안네는 베버와 동행했다. 이와 같이 마리안네는 항상 베버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병을 간호하면서 생애의 길동무가 되었다.
베버는 성격이 호탕하고 사교적이었으며 학문적 토론에 대해서는 남다른 열성을 보여 왔다. 그가 대학에 재직할 때나 또는 사회정책 잡지를 편집하고 있을 때에는 많은 학생·학자 및 정치인들과 상종했고, 그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이럴 때면 마리안네는 으레 그 회합에 동석하여 그들의 담화를 경청하였다. 마리안네는 베버의 일상 가정생활의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 세계에서도 항상 동반자였던 것이다.
마리안네 베버가 쓴 이 전기가 베버의 생애·성격·가정·교우관계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 형성 및 학문 활동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는 마리안네와 베버는 가정의 동반자인 동시에 베버의 사상세계에서도 함께 호흡하고 있었음에 연유한 것이라 하겠다. 마리안네는 베버 서거 후 베버의 유고 정리 및 그의 저작집 편집에도 베버의 동료 및 제자들과 함께 맡아서 했다.
여기에 번역 출간하게 된 마리안네의 베버 전기는 전 19장 및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780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다. 그 내용은 베버의 조상, 친가 및 외가의 가계·가업·신앙 및 가풍, 베버의 탄생·유년·학생 및 군대시절, 결혼, 교유, 대학재직 시의 학생과의 관계, 그의 학문적 활동, 이병罹病과 투병, 19세기 말의 독일의 사회상, 거기에 대한 베버의 견해와 정치활동, 공산주의의 대두와 혁명, 제1차 세계대전, 베버의 군복무, 독일의 패전과 강화의 전말 등등, 이 전기에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 독일국민으로서의 그리고 세기의 전환기에 처한 한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베버의 모습이 그 실상을 보듯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베버의 인간상은 그의 부인이었고 생애의 동반자였던 마리안네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와 같이 이해 깊게 서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베버의 사상에 관해서는 K. Jaspers『Max Weber』(1921), K. Lowith『Max Weber und Karl Marx』(1932), J. Winckelmann『Max Webers Versta?ndnis von Menschen und Gesellschaft in Max Weber, Gedachtnisschrift der Ludwig-Maximilians-Universita?t Mu?nchen』(1966) 등이 있으나 그의 인간상과 사상을 서술한 전기로는 이 마리안네의 저작이 유일하다.
마리안네 베버는 부군보다 30여년을 더 살았으며 그 동안 베버의 유작을 정리 편집하는 일을 돕는 한편 문화영역에 대한 저술생활을 하다가 1954년에 여든네 살로 타계했다.
마리안네 베버의 저작으로는 여기에 초역한 막스 베버 전기 외에『회상기』(Lebenserinnerungen, 1948) 등 수 편이 있다.
이번에 삼성문화문고에 수록된 이 초역본은 전 9장 총 300여 쪽으로 원저서를 대폭 압축한 것이다. 모든 초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초抄함에 있어서도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을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많은 고민을 겪었다.
우선 이 책을 초역하면서 원저서가 의도하고 있는 전체적 구상을 손상해서는 안 되겠고, 또 원저서의 문장을 역자 마음대로 개필하여도 안 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이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초역하려고 노력한 것이 이 초역본이다. 원저서가 전 19장 및 종장으로 구성된 것을 이 초역본에서 전 9장으로 한 것은 원저서의 중장 약 반을 송두리째 삭제한 것이 아니라 원저서의 장을 몇 장식 합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제1장 조상, 제2장 생가와 소년시대로 되어있는 것을 이 초역본에서는 하나의 장으로 묶어서‘1. 가문과 유년 시대’로 재편성했다.
서술내용의 압축에서는 역자의 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원저서의 서술에서는 가계에 관한 상당분량의 서술이 있었고, 또 베버와 그의 가족 및 친지들과의 장문의 서간문이 인용되어 있다. 이런 것은 대폭 잘라도 좋다고 믿었다. 그 밖의 서술에도 베?의 사상이나 활동을 이해하는데 삭제하여도 크게 지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어지는 것이 있어 이런 곳을 줄이고 보니 전체 서술의 의도를 크게 손상하지 않고도 압축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원저서의 서술을 대폭 압축하다 보니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잘 되지 않아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 밖에 번역에 있어서도 용어의 부적당·생활감정의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착오 등이 없지 않으리라 믿으나 이러한 미흡한 점은 독자의 질정을 받고자 한다. ---역자 후기 중에서
올 해는 막스 베버가 서거한 지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근래 들어 국내외에서는 막스 베버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부쩍 늘었다. 몇 년 전 독일에서는 막스 베버의 새로운 전기가 출간되기도 하였으며, 국내에서도 그의 대표 저서인『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새로운 연구나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하고, 또 많은 전문 연구자들이“베버를 다시 보자”는 취지하에 그의 저작물들을 다시 읽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막스 베버에 대한 재조명 시도는 단지 그의 서거 90주년, 100주년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주지하듯이 막스 베버라는 사상가는 사회학이나 공공행정학이라는 학문분야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었고, 법학, 경제사학, 정치학, 나아가 비교종교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분야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학자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화과학 방법론이나 시각은 오늘날에도 전문 연구자나 신중하게 살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막스 베버와 같은 사상가들의 저작을 직접 읽는다는 것은 사실 전문 연구자들도 벅찬데, 하물며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흔히 일반인들은 전문 연구자들이 쓴 해설서 같은 책을 읽는 것으로 막스 베버 읽기를 대신하고 만다. 하지만,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기 자신의 학문적 방향 정립이나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사상가들의 저서를 직접 읽어 보는 시도가 때로는 필요하다. 비록 책이 서술된 시대에 대한 생소함 때문이거나 또는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할 배경지식의 부족 등으로 저작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인가 얻어내기가 무척 어려울지라도 그러한 시도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막스 베버 읽기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이 요구된다.
이 책은 막스 베버의 부인인 마리안네 베버가 쓴 막스 베버 전기이다. 해서 막스 베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일을 시간 순서로 기록했다. 그러나 단순히 막스 베버의 일상사에 관한 기술만은 아니다. 그 자신이 학자이기도 했고 독자적인 저술가이기도 했던 부인이 쓴, 막스 베버의 학문적 성장과 변천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따라서 이 책의 일부 내용도 필자와 같은 비전문가에게는 막스 베버의 저작들만큼이나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완전하고 최종적인 형태로 정리되어 우리에게 제시되는 막스 베버의 학술 저작들과는 달리, 그가 그러한 저작들을 쓰고 또 독창적인 주장을 하게 되기까지의 사상과 지식의 형성과정을 엿보게 해준다는 점이다. 즉 그의 사상을 형성한 시대적 배경이나, 동시대에 누구와 교류했고, 또 어떤 서적들을 접하면서 그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 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번에 재출간하는 이 번역서는, 원래 필자의 선친인 조기준 박사가 1975년에 삼성문화문고 시리즈물의 하나로 번역했던 것을 다시 발간한 것이다. 경제사학자로서『한국자본주의 성립사론』이나『한국경제사』 등을 저술했던 조기준 박사는 과거 자신의 경제사학 연구 방법론 정립에 있어 막스 베버가 중요한 기초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술회한 적도 있으며, 또 이 책뿐만 아니라 막스 베버 사후 베버의 제자들이 편집하고 출간한『사회경제사』를 번역하고 강의에 활용하기도 하는 등 막스 베버에 관한 이해가 깊은 학자 중의 한 분이셨다. 필자가 어렸을 때 선친의 서재에 꽂혀 있었던 많은 책들 중에 막스 베버의 저작들이 유독 손을 많이 타서 헐어져 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의 재출간은 출판평론가인 조성일 씨가 최근의 시대적 흐름을 따라 재조명되는 막스 베버 및 그에 관한 저작들 중에서 특히 선친의 이 번역서에 주목하여, 필자에게 연락하면서 시작되었다. 필자도 경제학 연구자의 한 사람이지만, 새삼스럽게 막스 베버의 전기를 다시 찾아 읽어 보면서 막스 베버, 마리안네 베버, 그리고 선친에 대한 감상에 젖어 보기도 하였다.
책의 재출간을 위해 필자가 일하는 삼성금융연구소 및 문화문고를 담당하는 삼성문화재단 등에 문의하기도 하였는바, 친절한 답변과 함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담당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특히 이 책을 발굴하고 재출간을 기획한 조성일 선생과 이 책을 재편집하고 새롭게 벼상에 나올 수 있도록 애써준 출판사 소이연에게도 감사드린다.
---다시 책을 내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