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매혹된 사람들 중에는 작가들 못지않게 큐레이터도 많다. 큐레이터. 영화에선 언제나 멋지게 차려 입고 화이트 큐브 안을 또각또각 걸으며 엘리트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그들. 하지만 내가 매혹된 큐레이터들은 미술가의 작업실, 갤러리 전시실, 창고, 도서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며, 작가만큼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다큐 PD처럼 전시를 구상하며, 인부처럼 무거운 그림을 번쩍 들고, 기자만큼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큐레이터 중의 한 사람인 김한들이 쓰는 글이기에 이 책은 예사롭지 않다.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여기에 그가 특히 아끼는 네 명의 미술가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평온치 않았던 날들의 기록”을 남긴 전병구, “잊히는 것만큼 잊는 것도 두려운” 것을 상기시키는 박광수, “다 말해 주지 않기에 여운을 남기는” 팀 아이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오후의 햇빛”을 다시 던져 주는 알렉스 카츠의 그림들이 함께한다. 이들과 함께 “최선의 마음으로 알아챌 수 있는 사물들의 통역가”가 되고 싶다는 김한들이 통역하는 세상은 한층 풍부하고 아름답다.
문소영 (미술 전문 기자, 작가)
그림에 문외한이니 배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야지 하였다가 단숨에 흡수해 버린 책이다. 미술이라는 흰 뼈를 제 근간으로 두되 그에 살 붙인 근육과 지방은 다양한 문화 전반에서 끌어올 줄 알았다. 예서 중요한 키워드는 아마도 ‘절로’일 것이다. 자연처럼 스스로 그러할 줄 아는 글의 귀함을 간만에 이 책을 통해 찾은 듯싶다.
이 탄력적인 영민함은 무엇보다 저자의 솔직함에서 비롯한 바 클 것이다. 기교라는 어떤 척으로부터 한참이나 먼 사람. 그 가면 쓰기에 능하지 못해 사회생활 가운데 다친 적이 꽤나 잦았을 것 같은 사람. 그런데 그 과정이 또한 어쩔 수 없었겠다 싶은 사람. 왜? 무얼 어떻게 보고 그 무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몸으로 타고난 사람 같으니까. 그런 청춘은 매 순간 아플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매 순간 흔들리는 일로 보는 우리에게 매 순간 자극이라는 떨림을 줄 것이 분명하니까.
『혼자 보는 그림』이 품은 예술에 있어서의 그 ‘태도’란 것을 덕분에 여러 번 되씹고 있는 와중이다. ‘혼자’라는 거, ‘봄’이라는 거, ‘그림’이라는 거, 그 풍경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거리’라는 거. “내가 가고 싶은 자연은 어디에 안 간다. 풍경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이 뚝심에 무한한 신뢰를 감출 수가 없음은 기본이고 말이다.
김민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