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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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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그림

: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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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92g | 128*188*17mm
ISBN13 9791190136082
ISBN10 1190136082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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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청춘은 어쩌면 나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역할이 정하는 경계 안입니다. 학생이 직장인이 되고, 소녀가 엄마가 되면 어쩐지 경계 밖으로 밀려납니다. 바람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벗어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 미술은 경계가 없습니다. 작품 앞에서 나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관람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미술 안에서 영원한 청춘입니다. 부유浮遊하지만 자유로운 특혜를 영유할 수 있습니다.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위로받는 것이 가능합니다.
--- pp.8-9

삶은 항상 짐작도 예측도 불가능한 지점에 인간을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맞이한다. 안정된 일상으로 향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때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 p.23

좋아하는 미술관이 멀어도 가끔은 찾아가 전시를 보는 것. 그런 소중한 경험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차를 마시며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온기로 목 안에 남겨 놓는 것. 나이가 들었을 때 감기에서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이렇게 쌓은 온기일 것이다. 삶을 지키는 것은 결국 마음이고 마음은 이런 기억에서 온다.
--- p.32

조급함을 가지거나 욕심을 부리면 그 무게가 발목을 잡아 떠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무게에 지친 마음은 항상 눈앞을 가린다. 첫 번째일 때 가득했던 조급함과 욕심은 두 번째에서 어쩐지 스스로 사라진다.
--- p.41

흔하지 않은 형상의 등장도 일렁이는 검은 선의 느낌도 남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끌어당겼던 것은 남다른 이야기 구성과 마지막 장면이었다. 불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새는 죽어 버린 순간. 모든 것이 소멸하고 사라진 순간. 바로 슬픔이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사랑했던 무엇인가가 존재했던 자리에서 슬픔은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작아지거나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슬픈 경험과 기억은 내 몸과 삶에 각인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마음 한켠에 몇 개씩의 작은 돌멩이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공평하게 말이다.
--- p.66

그리움은 그림[畵], 글[書]과 어원이 같다. 모두 ‘긁는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긁는다’는 손톱이나 뾰족한 기구 따위로 바닥을 문지르는 행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종이 위에 형태로 긁어내면 그림, 문자로 긁어내면 글, 그리고 마음속에 긁어 새기면 그리움이다.
--- pp.85-86

요가 중 내면을 보기 좋은 동작은 사바사나다. 세션의 끝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자세이자 시간이다. ‘송장’이라는 뜻이 있어 긴 여정의 끝에서 작은 죽음을 맛보는 경험이라고 부른다. 가만히 긴장을 풀고 있으면 때로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때로는 많은 생각이 든다. 생각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인데 비어진 상태이기에 본질만 명확히 보인다.
나의 직업인 그림 보는 일은 사바사나와 닮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오직 시선만을 움직여 그림 안으로 향한다. 시선이 그림에 닿는 순간부터 그곳에는 캔버스와 나만이 존재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다.
--- pp.96-97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게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에 있다. 나는 화려하게 인상적인 것보다는 수수하고 옅더라도 오래 남는 것에 매번 마음을 주게 된다. 이러한 취향은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드러나는데, 팀 아이텔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 그렇다.
--- p.108

나는 이러한 것을 선택한 고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에 의해 외로운 형편에 놓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홀로 있는 상황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이지만 애달프거나 구슬퍼 보이지 않는다. 여유롭고 현연한 태도로 집중한 채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 pp.116-117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작품에 집중하는 시종여일한 생활을 한다. 성실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손에 익은 움직임만이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연스러움에 나는 곧, 잘 반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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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미술 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매혹된 사람들 중에는 작가들 못지않게 큐레이터도 많다. 큐레이터. 영화에선 언제나 멋지게 차려 입고 화이트 큐브 안을 또각또각 걸으며 엘리트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그들. 하지만 내가 매혹된 큐레이터들은 미술가의 작업실, 갤러리 전시실, 창고, 도서관을 정신없이 종횡무진하며, 작가만큼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다큐 PD처럼 전시를 구상하며, 인부처럼 무거운 그림을 번쩍 들고, 기자만큼 글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큐레이터 중의 한 사람인 김한들이 쓰는 글이기에 이 책은 예사롭지 않다. 큐레이터 체험 에세이도, 작품 감상 에세이도 아닌 이 책은, 미술과 시가 일상인 사람, 그가 인용한 화가 모란디의 말처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한 기록이다.
여기에 그가 특히 아끼는 네 명의 미술가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평온치 않았던 날들의 기록”을 남긴 전병구, “잊히는 것만큼 잊는 것도 두려운” 것을 상기시키는 박광수, “다 말해 주지 않기에 여운을 남기는” 팀 아이텔,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오후의 햇빛”을 다시 던져 주는 알렉스 카츠의 그림들이 함께한다. 이들과 함께 “최선의 마음으로 알아챌 수 있는 사물들의 통역가”가 되고 싶다는 김한들이 통역하는 세상은 한층 풍부하고 아름답다.
문소영 (미술 전문 기자, 작가)
그림에 문외한이니 배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야지 하였다가 단숨에 흡수해 버린 책이다. 미술이라는 흰 뼈를 제 근간으로 두되 그에 살 붙인 근육과 지방은 다양한 문화 전반에서 끌어올 줄 알았다. 예서 중요한 키워드는 아마도 ‘절로’일 것이다. 자연처럼 스스로 그러할 줄 아는 글의 귀함을 간만에 이 책을 통해 찾은 듯싶다.
이 탄력적인 영민함은 무엇보다 저자의 솔직함에서 비롯한 바 클 것이다. 기교라는 어떤 척으로부터 한참이나 먼 사람. 그 가면 쓰기에 능하지 못해 사회생활 가운데 다친 적이 꽤나 잦았을 것 같은 사람. 그런데 그 과정이 또한 어쩔 수 없었겠다 싶은 사람. 왜? 무얼 어떻게 보고 그 무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몸으로 타고난 사람 같으니까. 그런 청춘은 매 순간 아플 수밖에 없고, 그렇게 매 순간 흔들리는 일로 보는 우리에게 매 순간 자극이라는 떨림을 줄 것이 분명하니까.
『혼자 보는 그림』이 품은 예술에 있어서의 그 ‘태도’란 것을 덕분에 여러 번 되씹고 있는 와중이다. ‘혼자’라는 거, ‘봄’이라는 거, ‘그림’이라는 거, 그 풍경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거리’라는 거. “내가 가고 싶은 자연은 어디에 안 간다. 풍경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이 뚝심에 무한한 신뢰를 감출 수가 없음은 기본이고 말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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