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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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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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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398g | 130*190*20mm
ISBN13 9788950981846
ISBN10 89509818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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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눈부신 조명이 내리꽂힌 무대 위에서 춤추며 노래했고 수천 명의 관중들은 그 남자에게 글자 그대로 미쳐 있었다. 관중들은 온몸으로 환호하고 열광했다. 음악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미세한 표정과 호흡, 숨소리, 목소리, 손끝, 발끝의 움직임까지 어느 하나 눈을 뗄 수 없었다. 땀에 젖은 까만 곱슬머리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탱글탱글 땀방울들을 튕겨냈다.

곧바로 마이클 잭슨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매일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보고 자료를 찾았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머리는 찌릿해지고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어!’ 찌질이, 왕따, 사춘기, 반항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던 내가 꽤 오래 고민하다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저 춤 배우고 싶어요.”
---p.65~67

세계 대회 우승은 내 인생을 변화시킨 두 번째 변곡점이 됐다.

내가 가장 바라던 순간.
하지만 가장 힘들어진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황홀함은 안타깝게도 3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걸. 대회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나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지하 연습실에 있었다. 며칠 지나면 다시 또 돈에 쪼들려야 했고, 호텔방 대신 고시원 작은 침대에 몸을 뉘어야 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사람들을 붙잡고 “제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최고 댄서예요.”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대회든 우승을 하고 돌아오면 늘 반복됐던 일상이었다. 제아무리 세계 1등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연습실 한쪽 다용도실.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 나는 왼쪽 벽을 보고 누워 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둠 속에서도 싱크대, 작은 냉장고, 선풍기,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수도세, 전기세, 연습실 관리비가 떠오른다. (중략) 그토록 원했던 타이틀을 얻었지만 당장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화려한 프로필은 눈에 보이는 수익으로 바뀌지 않았고, 명성은 최고였지만 내가 겪는 현실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그래, 이게 현실이라면. 그렇다면 내면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만큼 나는 성장했나? 발전했어?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부서져 흩어진다. 꿈꿔왔던 세계 챔피언은 현실이 됐는데, 그게 꿈이었나? 아니면 지금 이게 꿈인가.
꿈같았던 1등의 기쁨은 딱 3일 만에 끝났다.
---p.98~103


“그냥 춤이나 추세요. 그 노래 실력으로 뭘 하려고 그래.”

오디션에서는 보기 좋게 탈락했다. 누구누구의 춤 선생이라면서 뭐 하러 여기 나왔냐는 말도 들었다. 방송에서 눈물까지 보였는데 지금도 그때 영상을 찾아보면 세상에 이렇게 찌질할 수 없다. 그만큼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난 당시 변화 없는 내 삶에서 벗어나야만 했고, 절박했다. 수년 전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이후에도 한결같던 어두운 지하 연습실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암담함을 허울 좋은 이름 뒤에서 감내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뭐라면 어떤가. 난 그냥 할 거야. 뭐라도 해야지. 그냥 있는 것보단 낫잖아.”
---p.171~173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다른 나를 만나야겠다.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을 먹던 아이가 아침에 주스를 만들어 마시고, 정해놓은 운동을 한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생각한 대로. 계획을 짜서 체계적으로. 나의 매일은 내가 선택하는 대로 흘러가니까.

‘펑키리아’가 아직 괜찮다고 인정받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나를 바꾸지 못했을 거다.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을 누군가 조금이라도 알아줬다면 아까워서라도 이렇게 다 버리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가보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치고 올라갈 여지가 생겼다.

그렇게 ‘펑키리아’를 버린 건, 어쩌면 나비가 번데기를 뚫고 나온 것이나 뱀의 탈피와 비슷할지 모른다.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완전한 나로 새롭게 거듭난 것. 지난 시간을 거쳐 나는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했다.
--- p.212~215

레게 머리 친구는 어디에서도 그런 동작을 해본 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보잉을 흉내 내며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였던 적이 이전엔 없었을지 모른다. 춤 전문가들에겐 말도 안 되는 동작이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몸짓으로 그 순간의 자신을 드러냈다. 그 날것의 귀함은 함께 있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모두가 여기에 환호로 응답했다. 그 순간의 희열을 다 같이 공감하는 거다.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시간. 그것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가슴 벅참. 우리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그때.

여러분의 춤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같은 공간 안에서 춤이 주는 에너지를 함께 누릴 때의 기쁨.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이 그 순간 나를 소름 돋게 하고, 눈물 나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없다.
--- p.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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