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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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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李德一)

1961년 생으로 충남 아산에서 자랐다.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다. 언제나 발표하는 저술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왔다. 그는 모든 권위와 기득권을 거부하며 주류 학계에 편입되지 않고, 그들이 외면하거나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방송, 신문, 잡지의 기고 활동과 대중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열정을 함께 나누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조선 왕 독살 사건』,『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조선 왕을 말하다』,『근대를 말하다』등은 이러한 활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쓰는『조선왕조실록』역시 학습과 지식 전달 위주의 다이제스트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을 읽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진정한 역사서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10년간의 구상과 5년간의 집필이라는 그의 끈질긴 노력 덕에 전 세계 어느 국가도 갖지 못한 방대한 기록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마침내 그 빛을 제대로 보게 됐다.

뛰어난 강연으로 기업체를 비롯하여 중앙공무원교육원의 고위공직자 과정 최우수 강사로 선정되는 등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사학자로 평가받는다. 1차 사료 강독과 교양한국사 강의를 진행하여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는 한편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통해 대중을 역사현장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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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역사학은 그 관점에 동의하든 동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를 떠나서 서술이 일관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남북한 역사학계가 걸었던 사학사史學史가 있다. 이기백이 유물사관으로 분류한 학파는 사회경제사학이라고 불렀다. 맑스의 사적유물론을 지지하는 학자들로서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함께 일제 식민통치에 맞서 싸운 학자들이었다. 북한은 분단 직후부터 역사학을 체제경쟁의 주요한 수단으로 삼았는데, 그 일환으로 1946년 7월 말경 북한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역사학자들을 대거 초청했다... 북한학자 홍기문은 1949년 『력사제문제』에 북한 역사학계의 과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력사학자들은 조선력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 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00 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 『력사제문제』, 1949)”... 1949년에 북한 역사학계는 ‘낙랑군=평양설’과 ‘임나=가야설’을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그 극복에 나섰다.
_「서설 : 국가를 보는 눈」 중에서

윤내현 교수는 『한국열국사연구』에서 남낙랑을 최리崔理가 왕으로 있던 나라라는 뜻에서 최씨낙랑국으로 명명했다. 고구려 대무신왕 15년32 옥저를 유람하던 왕자 호동을 낙랑왕 최리가 보고 “그대가 어찌 북국신왕北國神王의 아들이 아니냐?”라면서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고구려를 ‘북국’이라고 부른 점에서 고구려 남쪽에 있던 나라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북한의 리순진은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대한 연구』에서 “락랑국은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였던 만(위만)조선이 무너진 후에 평양 일대의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나라였다”라고 말했다. 북한 역시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별하고 있으며, 평양 일대의 낙랑 유적들은 한사군 낙랑군 유적·유물이 아니라 고조선 후예들의 국가인 낙랑국 유적·유물이거나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조작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해방 후 평양 일대에서 3천여 기의 고대 무덤을 발굴한 결과 단 한 개의 한漢나라 무덤을 찾지 못했다면서 새로 발굴한 유적·유물들은 대부분 최씨 낙랑국 무덤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계는 북한에서 발표한 낙랑‘국國’을 낙랑‘군郡’으로 변조해 북한도 평양을 낙랑군 지역으로 인정한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해왔다. 남한 강단사학이 분단에 기생해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한 사례이다.
_「2장-2 열국시대」 중에서

북한학자 김석형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서기』는 서기전 7세기부터라고 하는 ‘천황’들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북규슈로부터 기내 야마또로의 천황가 세력(대체로 백제-가라 계통이 우수한 세력)의 동천(東遷)이 6세기 초에 있었던 일일진대 『일본서기』의 모든 기사내용은 6세기 이후의 일일 것이다…4~5세기 북규슈에 있었을 시기에 이 왜 세력이 백제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일들이 외곡 윤색되어 기내 야마또에서 있었던 일처럼 만들어서 『일본서기』에 실렸다고 본다(김석형, 『초기 조일관계사 하』).” 북한 학계는 서기 4~5세기에 가야계가 북규슈에 진출했다가 6세기 이후 기내 야마토로 천도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4~5세기에 왜와 백제 사이에 있었던 일도 6세기 이후의 일처럼 시기를 조작해 서술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61년에 ‘한사군=한반도설’을 해체시키고, 1963년에 ‘임나=가야설’을 해체시켰는데, 남한 강단사학계는 아직도 이 두 학설을 도그마로 섬기고 있으니 남한을 아래로 보는 것이다.
_「3장-2 임나일본부설 비판, 임나는 가야인가?」 중에서

『세종실록지리지』는 윤관이 고려지경이란 비석을 세운 공험진, 선춘령을 두만강 북쪽 688리라고 쓰고 있고, 조선에서는 통상 700리라고 말했다... 『태종실록』 5년(1405) 5월 16일조는 태종이 김첨을 통해서 “공험진 이북은 요동遼東으로 환속하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그대로 본국本國(조선)에 붙여 달라”는 태종의 요청을 명 태조가 받아들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고려 말 우왕이 명 태조 주원장에게 확인 받았던 철령~공험진까지였던 고려의 국경선이 그대로 조선의 국경선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때의 철령은 지금의 요녕성 심양 남쪽 진상둔진이고, 공험진은 흑룡강성 영안 부근이다. 조선 후기 지도에도 공험진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명기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한국사의 강역을 축소시키기 위해 공험진을 함경남도 안변에 그린 것을 지금껏 남한 강단사학계가 추종하면서 각종 국사교과서에도 고려 국경이 함경남도까지였던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윤관이나 우왕, 태종이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이다.
_「5장-2 중화 사대주의 세력의 득세. 생각하는 한국사2 : 철령과 공험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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