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학몽(雪峰鶴夢, 1890~1969) 1890년 11월 25일 함북 부령(富寧)에서 장영교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2년 한성중앙학교를 거쳐 공업전문학원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고, 1910년 스무 살 되던 해에 조선총독부 문관(文官)으로 취직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항일운동에 관련되어 검거되었다.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파면된 후 한동안 투옥 또는 도피 생활을 하다 1915년 25세에 함경남도 안변의 석왕사(釋王寺)로 출가해 참선 공부에 전념한다. 1920년 만공(滿空) 스님 회상에 머물며 더욱 공부를 깊이 하고 만공 스님의 법을 이었다. 이어 1925년에는 도봉산 망월사 용성(龍城) 스님 문하에서 정진했다. 이후 20여 년간 오대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에서 정진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해 선학원 등에 주석하면서 정화불사(淨化佛事)에 전력을 기울이다, 1955년 불교정화가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한 뒤 남쪽으로 주석처를 옮겨 후학들을 제접했다. 부산 범어사와 대각사, 선암사 등에서 머물던 스님은 1969년 4월 17일 선암사에서 세수 80, 법랍 55세로 원적에 들었다. 전법제자로 금산지원(金山智源 ; 1931~2008) 스님이 있으며, ??선문촬요??, ??선관책진??, ??선문염송?? 등의 원전을 현토 주석한 저술을 남겼다. 1971년 금산 스님이 부산 온천동에 대덕사(大德寺)를 창건하고 설봉 스님의 법어를 모아 ??설봉대전??과 ??설봉학몽 대선사 선문염송 법문집??을 편찬하고, 설봉 스님이 현토한 ??우리말 선문촬요??를 간행하였다. 현재 대덕사에는 금산 스님의 상좌인 춘식(春植) 스님이 주지를 맡아 출재가 선객들에게 참선을 지도하고 있다. 다음카페: cafe.daum.net/daedeok-dharma)
역주 : 심성일
1969년 생. 훈산(薰山) 박홍영 거사와 부산 무심선원(無心禪院) 김태완 원장의 지도 아래 7년 간 조사선 공부. 현재 대덕사에 주석하는 춘식 스님으로부터 원명(圓明)이란 거사 호를 받고 매주 입실(入室)하여 공부 지도를 받고 있다. mongzy@hanmail.net
어느 날 성수 스님(1923~2012, 황대선원 조실)이 부산 초량 금수사에 들렀더니 한 노승이 빨간 홍가사를 입고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설하고 있었다. 성수 스님은 그냥 갈 수 없어서 노승이 하단한 후에 인사를 드리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현재 하신 법문이 당신 거요, 남의 거요?” “내 것도 무진장(無盡藏)인데, 남의 재산 탐하겠소?” “누더기 속의 옥동자로구나.” “요즘 선방에 장값(찬값)하는 중이 있구려.” 이렇게 말하며 노승이 미소를 띠자, 성수 스님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모양은 남루하나 정신은 살아 있네. 이분이 바로 설봉(雪峰) 대선사이다. --- p. 16
이 ‘무(無)’자(화두)가 과거ㆍ현재ㆍ미래 모든 부처님의 골수와 역대 조사들의 안목과 모든 중생의 본래면목을 한꺼번에 뭇사람들의 면전에 곧장 드러내 보였거늘, 어찌하여 꿰뚫어 보지 못하고는 눈동자를 바꾸어 버리는가? 옛날에 흥선 화상에게 어느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흥선이 답했다. “있다.” 승려가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는 불성이 있습니까?” “나는 없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데, 화상께선 어째서 홀로 없으십니까?” “나는 일체 중생이 아니다.” “그러면 부처이십니까?” “부처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물건입니까?” “물건도 또한 아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곳이 바로 뭇사람들이 목숨을 놓을 곳이다. 경산의 대혜 화상은 “‘있다ㆍ없다’의 ‘없다’도 아니고, ‘참으로 없다’는 ‘없다’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역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부디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때에 이것이 어떠한 면목인가? 악! 한가한 학문의 알음알이로 조사의 뜻을 매몰시키지 말라. --- p. 30
꽃을 들어 보임[世尊拈花 화두]이여! 임금께서 보배궁전에 오르시니 누군들 은혜를 입지 않겠는가? 빙그레 미소 지음이여! 촌 노인네가 노래하니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는구나!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해 주었으니, 만약 가섭이 아니었다면 받아들이기가 대단히 어려웠으리라. 서로 만나 둘이 한 집에 모여 북 치고 거문고 비파를 희롱하도다. 그대는 방초(芳草) 핀 길로 가고 나는 또한 깊은 산골로 들어가리. --- p. 62
서암 노인의 깨달은 뒤의 소치[서암 스님의 ‘주인공’ 화두]는 행위가 옳기는 옳으나 또한 뒷사람이 점검과 꾸짖음을 면하지는 못한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놓아 버린 것도 또한 놓아 버려서 곧바로 배움을 끊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러하나, 말해보라. 서암 노인이 날마다 쓰는 곳을 보았는가? 깨어 있어라! 제가 넘어지고 제가 일어남을 도리어 제가 아나니 마음으로 남을 저버리지 않아 부끄러운 기색 없네. 천하의 도 배우는 이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저울 눈금을 잘못 읽지 말라. --- p. 90
남전의 명령[南泉斬猫 화두]에 대중이 목숨을 잃었다. 남전이 조주에게 이야기한 뜻은 무엇인가? 조주는 다 떨어진 짚신으로 죽은 고양이를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성미가 급한 놈이었다면 곧바로 남전을 거꾸러뜨리고 대중과 더불어 화를 풀었을 것이니 어찌 시원하지 않았겠는가? 남전이 고양이를 베고 조주에게 물으니 한 집에 일이 있으면 백 집이 바쁜 격이로다. 조주가 말없이 머리에 신을 이고 나온 것을 양당의 운수납자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 p. 101
평소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고 하였으니, 영리한 놈이 말끝에 알아차리면 몸을 벗어날 분수가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요새 사람들은 스스로 천진함을 지니고도 남이 없는 묘한 깨달음을 알지 못하니 어찌 윤회의 고통을 면할 수 있겠는가? 그 원인은 바로 모든 중생이 자기 본래의 성품에 어두워 육진경계에 얽매인 생각, 곧 번뇌에 구속되어 업을 지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평소의 마음이 아니라 뒤집어진 습성과 업력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하나 맞아떨어지겠는가? 대지엔 본래 아무 일 없으니 미혹한 이와 깨달은 이 얼마나 되는가? 배움을 끊은 할 일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지도 않고 참됨을 구하지도 않네.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거늘 어찌 반드시 영산회상의 세존께 물어야만 하겠는가.